취재·편집·교열 섭렵한 베테랑, 5수 끝 '우리말 달인' 등극

[인터뷰] 김형택 뉴스1 편집위원

‘강파르다’와 ‘걍파르다’, ‘게정댄다’와 ‘거정댄다’, ‘괘란쩍다’와 ‘괴란쩍다’. 이 중 올바른 단어는 무엇일까.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면 KBS 1TV에서 방영하는 ‘우리말 겨루기’에 나갈 것을 추천한다. 일반 문제도 아닌, 달인 도전 1단계 문제를 무리 없이 푼 것이기 때문이다.


김형택 뉴스1 편집위원은 8일 방송된 997회 우리말 겨루기에서 아주 가뿐하게 이 문제들을 풀었다. 출연자 4명 중 1등을 차지했고, 달인 도전 문제 3단계를 모두 통과해 제64대 우리말 달인이 됐다. 기자로선 첫 우리말 달인이다. 우리말 달인은 매년 3명 정도만 나올 정도로 매우 드물다.

김형택 뉴스1 편집위원은 8일 방송된 KBS 1TV ‘우리말 겨루기’에서 출연자 4명 중 1등을 차지한 데 이어 달인 도전 문제 3단계를 모두 통과해 제64대 우리말 달인이 됐다. 위 사진은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을 읽고 있는 김 위원의 모습. 이 책은 문화관광부가 2001년 펴낸 책으로, 김 위원은 책 안에 담긴 4000여 단어를 모두 외웠다.


김 위원이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와 우리말 겨루기의 인연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간스포츠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십자말풀이를 냈던 김 위원은 우연히 우리말 겨루기를 시청하다가 출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십자말풀이 출제를 한 2~3년간 했거든요. 국어사전을 뒤져가며 문제를 냈는데, 방송을 보니까 풀 만한 거예요. 저 정도면 솔직히 조금만 공부하면 되겠다, 나도 최종 2인엔 올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그는 꼬박 1년을 공부했다. 문화관광부가 2001년 펴낸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을 주 교재로 삼아 4000여 단어를 달달 외웠고, 5년 치가 넘는 우리말 겨루기 방송분도 복습했다. 그 노력 덕분인지 그는 2009년 12월 첫 도전에서 곧바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1단계서 1750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2단계에 진출한 뒤 상대에게 한 차례 기회도 주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문제를 맞혀 우승했다. 이후로도 2016년 5월과 7월, 2019년 12월에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해 4차례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띄어쓰기’에 발목을 잡히며 매번 달인 등극엔 실패했다.


우리말 겨루기 출연은 삶의 행로도 바꿔놓았다. 2016년 5월 우승을 하고 두 달 뒤 우승자 특집에서 또 한 번 우승한 때였는데 마침 교열 인력이 그만두면서 그에게 교열을 봐달라는 제안이 왔다. 한국일보에 취재기자로 입사했다가 20년을 넘게 편집 일을 했던 그는 그렇게 기자 인생 후반부, 교열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취재, 편집을 하다가 교열을 보게 된 아주 희한한 약력이죠. 그런데 또 적성에 맞아요. 제가 좀 꼼꼼한 성격이거든요. 지금도 담배를 안 피워서 그런지 사람 이름, 전화번호는 잘 외웁니다.(웃음)”


2019년 우승 이후로 한동안 우리말 겨루기 출연을 쉬었던 그는 올해 또 한 번 도전을 결심했다. 원래 지난해 나가려 했지만 ‘삼재’였단다. 기왕이면 삼재는 피하자, 그리고 우승의 기를 받아보자는 생각에 지난해 한국기자협회 주최 풋살대회서 MVP를 받은 심현영 뉴스1 기자에게 응원도 요청했다. “깻잎 한 장 차이로 매번 달인이 안 되니까 샤머니즘을 동원한 거예요. 심현영 기자와 같이 응원 온 김송이 기자도 얼마 전 미국 뉴욕 월가에서 황소상을 만지고 왔거든요. 어떻게 보면 우주의 기운을 모은 셈이죠. 솔직히 이번에 달인 안 되면 그만 도전하자, 개인적으로 다짐까지 했어요.”

김형택 뉴스1 편집위원은 8일 방송된 KBS 1TV ‘우리말 겨루기’에서 출연자 4명 중 1등을 차지한 데 이어 달인 도전 문제 3단계를 모두 통과해 제64대 우리말 달인이 됐다.


다만 달인 등극의 길은 쉽지 않았다. 예전엔 실력과 관계없이 출연자를 배정했다면 최근엔 실력에 맞춰 출연자를 정하는 터라 김 위원은 엄청난 실력자들과 함께 출연하게 됐다. 김 위원을 포함해 4명의 우승 횟수가 무려 12회에 달하는 ‘죽음의 조’에 배정된 것이다. “월드컵에 비유하면 아르헨티나,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이 한 조가 된 거예요. 심지어 함께 출연하게 된 하영옥씨는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급의, 어마어마한 실력을 갖춘 분이에요. 우승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차라리 녹화 날 회사에 일이 있다고 한 달 뒤로 미룰까, 고민까지 했습니다.(웃음)”


그래도 어쩌랴, 출연 한 달 전부터 그는 주중엔 3~4시간씩, 주말엔 8~10시간씩 우리말 공부에 매진했다. 공부를 위해 연차도 두 번 냈다. 2020년부터 3년 치 방송분을 복습하고 A4 용지 120장 정도로 기출문제를 내 도합 6000여개의 단어를 달달 외웠다. 수능 때도, 언론고시 때도 이 정도로 공부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녹화 날, 하늘이 도운 건지 그간의 노력이 빛을 발한 건지 김 위원은 쟁쟁한 참가자들을 제치고 우승을 한 데 이어 달인 도전 3단계 문제까지 모두 통과했다. 드디어 우리말 달인으로 등극한 것이다. “정말 울컥했어요. 눈물이 살짝 맺히면서 드디어 한을 풀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승자들이 많으니, 작가들도 작정하고 어려운 문제를 냈고 달인 도전 마지막 문제는 집에서 풀 때도 다섯 번 중에 한 번 맞히는 정도였는데. 정말 하늘이 내려줬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형택 뉴스1 편집위원은 8일 방송된 KBS 1TV ‘우리말 겨루기’에서 출연자 4명 중 1등을 차지한 데 이어 달인 도전 문제 3단계를 모두 통과해 제64대 우리말 달인이 됐다.


회사 동료들도 진심으로 김 위원의 달인 등극을 축하했다. 한동안 ‘인재가 우리 회사에 다니고 있다’, ‘달인께서 내 기사를 봐주셔서 영광’이라는 칭찬을 수없이 들었다. “우승상금이 3000만원인데 10%는 KBS강태원복지재단에 기부하고 세금을 제한 뒤 2500만원 남짓을 받거든요. 고마운 회사 동료들을 위해 호두과자를 돌리고, 팀원들과 부장들에겐 따로 점심을 샀습니다. 친구들, 처남 쪽부터 해서 가족들에게도 맛있는 식사 한 번씩 사야죠.”


달인이 된 그는 앞으론 자력으로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하지 못한다. 대신 달인들만 모은 왕중왕전에 출연할 수 있다. “달인이 서너 명 더 나오면 내년 정도엔 왕중왕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미 예의주시하고 있는 달인도 있습니다. 석 달 전에 달인이 된 분인데 30대 초반에 나오자마자 달인이 됐거든요. 그때가 되면 또 한 달간 바짝 공부해서 열심히 겨뤄보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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