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회의 방청과 촬영허가 신청을 거쳐 방송통신위원회 취재를 준비하던 언론사 취재진이 회의 직전 말 그대로 ‘쫓겨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취재진에 퇴거를 요구한 방통위 담당 공무원들은 “출입 등록이 안 된 매체”라는 이유를 댔는데, 불과 3개월 전 같은 회의실 앞에서 김효재 당시 위원장 직무대행을 직접 촬영하기도 했던 그 매체는 뉴스타파다.
‘내보내려는’ 방통위, ‘버티는’ 뉴스타파…30분간의 대치
지난 29일 방통위 기자실과 회의실 주변은 평소보다 많은 취재진으로 붐볐다. 이날 회의에서 보도전문채널 YTN과 연합뉴스TV 최다액출자자 변경승인 건을 비롯해 주요 안건들이 다뤄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약 30석 규모의 방청석이 다 찼고, 회의 장면을 스케치하려는 사진기자와 방송 카메라 기자도 10명이 넘어 보였다. 이 중엔 뉴스타파 촬영 기자 2명과 PD 1명도 있었다.
그런데 회의 시작을 5분 정도 남겨두고 카메라가 있는 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방통위가 뉴스타파 카메라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요구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뉴스타파 취재진에 따르면 배중섭 방통위 기획조정관은 “회의 운영을 책임지는 기획조정관”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책임자 자격으로 등록되지 않은 매체에 촬영을 불허한다”며 퇴장을 요청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방청 허가받아서 들어왔다”며 반발하자 배중섭 국장은 “대변인실과 혼선이 있었다”며 “등록된 언론사만 허가하기로 했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면서 뉴스타파 카메라 렌즈를 가린 채 회의실 밖으로 재차 유도했다.
10분가량 버티던 취재진은 결국 회의장 밖 복도까지 밀려났고, 그곳에서도 한참 실랑이가 이어졌다. 뉴스타파 취재진과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이 “뉴스타파만 콕 집어서 내보내는 거냐”, “쫓아내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배중섭 국장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위원장님 심기 경호를 위해 쫓아내는 거냐”는 물음엔 “비난하지 말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나중엔 다른 방통위 공무원들까지 나서서 “일단 대변인실로 내려가서 얘기하시라”고 다그쳤다. 그런데도 취재진이 회의장 앞을 벗어나지 않자 청사 방호요원을 부르고 “복도에 가림막을 치라”고도 했다. 결국, 30여분만에 뉴스타파 취재진은 회의장 앞을 떠났다. 뉴스타파가 떠나고 장내가 정리되자마자 이동관 위원장이 회의장에 들어섰고, 곧바로 회의가 시작됐다. 이 위원장은 회의가 30분 늦게 시작한 데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위원장 지시? 국장이 단독 결정? ‘이래도 저래도 문제’
이날 방통위가 뉴스타파 취재진에 퇴장을 요청하며 제시한 근거는 방송통신위원회 회의운영에 관한 규칙 제10조 2항이었다. ‘위원장은 회의의 적절한 운영과 질서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방청인 수를 제한하거나 방청인의 퇴장을 명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같은 규정이 방통위법 제13조 6항에도 있다.
그러나 해당 문장의 주어는 ‘위원장’이다. 퇴장을 명하는 주체는 위원장이란 뜻이다. 하지만 이날 배중섭 국장은 “위원장께 여쭤보지 않았고, 제가 결정했다”, “나중에 제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회의 직후 기자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추가 설명에서도 그는 “모든 업무를 다 위원장께서 하나하나 결정하지는 않는다”며 “적정한 선에서 국장과 과장들이 판단해서 할 수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퇴거 조치가 위원장의 지시가 아닌 기획조정관 단독 결정에 따라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설명이 사실이어도, 사실이 아니어도 문제다. 만일 뉴스타파 퇴장을 이동관 위원장이 지시하거나 암묵적으로 승인했다면 뉴스타파 측이 제기한 대로 “언론탄압”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고, 방통위 국장이 단독으로 결정했다면 위법 논란이 불가피하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30일 낸 논평에서 “방통위 규칙에 촬영 허가는 위원장에게 받도록 되어 있다. 허가 취소는 허가권자가 해야 한다. 위원장이 허가한 촬영을 국·과장이 임의대로 취소할 수는 없다”며 “방통위는 위원장의 허가 취소 결정이 있었는지, 취소 사유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없다면 위법한 행정처분”이라고 지적했다.
회의 방청을 허가할지 말지 방통위가 정할 수 있다?
배중섭 국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규정상으론 언론 보도나 이런 것들을 신청했을 경우 ‘허가할 수 있다’ 해서 오실 분, 안 오실 분 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방통위 회의 운영 규칙은 물론 상위법인 방통위법에도 “위원회 회의는 공개”가 원칙이며, “공개되는 회의를 회의장에서 방청하려는 사람은” 방청 신청서 등을 제출하는 방식을 통해 방청권을 발급받아 방청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공개된 회의의 방청은 방통위의 ‘허가’가 필요한 사항이 아니다.
다만 방통위 규칙 제11조에 따라 “언론보도를 목적으로 회의장 안에서 녹음·녹화·촬영·중계방송 등의 행위”를 하고자 할 때는 별도의 신청서를 작성해 위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날 회의 2시간 전 방통위에 방청 및 촬영허가 신청서를 제출했고, 신분증 확인 후 출입증을 발급받아 방통위 담당 공무원의 인솔하에 회의장에 입장했다. 그런데도 방통위는 뒤늦게 “혼선이 있었다”는 이유로 뉴스타파에 퇴장 조처를 내린 것이다.
배중섭 국장은 뉴스타파가 출입 언론사가 아니라는 점도 “하나의 판단 기준이 됐다”며 “방통위에 출입 등록이 안 된 매체는 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출입 등록이 안 된 매체는 취재 허가를 안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런 전제는 없고, 신청이 들어오면 그때 봐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역시 위법 소지가 있다. 방통위법 등은 회의 방청 자격을 출입 매체는 물론 언론사로도 한정하지 않는다. “회의장에서 방청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회의 방청을 신청할 수 있다. 실제 언론인이 아닌 사람이 회의를 방청하는 일이 때때로 있다. 방통위는 “회의의 적절한 운영과 질서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때”에만 위원장의 명으로 방청인 수를 제한하거나 퇴장시킬 수 있을 뿐이다. 이날 뉴스타파 퇴장 조치가 이 조건에 따라 이뤄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법 넘어선 방통위 ‘임의 잣대’…“블랙리스트 아닌가”
배 국장의 발언은 앞으로도 방통위가 언론 등의 회의 방청 신청을 ‘선별’해서 받아들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더 문제적이다. 다음엔 뉴스타파 아닌 다른 언론사, 언론인, 혹은 방청인이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연대가 30일 논평에서 방통위의 뉴스타파 취재 불허를 두고 “특정 언론을 겨냥한 블랙리스트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언론연대는 “방통위는 앞으로도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회의 방청과 취재의 자유를 법률과 규칙이 아닌 방통위 국과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뉴스타파의 촬영 취재를 금지했던 내심의 기준은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이어 “윤석열 정권이, 이동관 위원장이 불편해하는 보도를 하는 언론이 아닌가”라고 지적하며 “특정 언론을 상대로 한 자의적인 취재 제한이 계속된다면 이런 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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