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완수 전 이사장이 겪은 언론진흥재단의 '이상한 6개월'
우여곡절 끝 3년 임기 마치고 퇴임한 표완수 전 이사장
상임이사 3명, 이사장 허수아비 취급 "2선으로 물러나라"
박보균 전 장관에 "상식 밖 인사들 왜 이사로 추천했냐" 따져
표완수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이 퇴임했다. 3년 임기를 채웠지만, 지난 몇 개월은 노골적인 배제와 모욕, 수모로 점철됐다. 상임이사들은 이사장 2선 퇴진을 요구하고, 거부하자 해임안을 상정해 몰아내려 했다. 마주치면 시선을 피하고, 불러도 오지 않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결재하지 않았는데 해외 출장을 갔다. 지난 18일 이임식 직후 만난 표 전 이사장의 얼굴에는 만감이 서렸다.
“1년 반쯤 제대로 일할 수 있었고, 새 정부가 들어오고 1년 반은 제대로 못한 것 같아요. 임기 말 6개월 분위기는 조금 이상했죠.” 그가 말한 ‘이상한 6개월’은 지난 3월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한 상임이사 3명(유병철 경영본부장, 남정호 미디어본부장, 정권현 정부광고본부장)이 언론재단에 부임한 이후를 가리킨다. “잘 모시겠다”고 했던 그들은 민간단체 지원 사업 심사에 손을 대려다 제동이 걸리자 표변했다. ‘설립일로부터 1년 이상 경과한 단체’ 지원 자격 조항을 빼고, 심사위원회가 있는데 최종 선정은 자신들이 하겠다고 했다. “단체지원 사업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라 반대했다”며 “그런 일이 있고 ‘모시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고 표 전 이사장은 말했다.
6월 중순께, 이사장이 하루 렌터카를 탔는데 그 비용이 78만원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2020년 10월에 있었던 일이 난데없이 불거진 것이다.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언론재단의 조작으로 신문사들의 광고 단가 순위가 뒤바뀌었다”는 보수매체 보도가 이어졌다. 국민의힘 공정미디어위원회가 성명을 냈고, 보수단체는 표 전 이사장과 직원들을 고발했다. 상임이사들은 고발을 이유로 2선 퇴진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 “셋이 회의실에서 잠깐 뵙자고 하더라. 고발도 되고 그랬으니 2선으로 물러나 달라. ‘지금 리더십 어쩌고 하는 건 당신들밖에 없어. 지금 당신들 총만 안 들었지, 나를 최규하 만드는 것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어’.” 그렇게 얘기했다.
그 후에 경영본부장이 매주 월요일 정례적으로 열리는 간부회의를 생략하고, 각 본부별로 따로 회의를 진행하라는 지시를 경영기획실에 내렸다. 이사장에게 사전 보고도 없었다. 전두환 신군부가 최규하 대통령을 허수아비 취급했던 것처럼 상임이사들은 이사장을 대놓고 무시했다. 8월1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박보균 장관이 표완수 이사장을 불러 긴급 면담을 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할 경영진이 수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리더십 와해 상황으로…. 감독 기관으로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해임하겠다는 메시지였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광고지표 조작 논란 등으로 고발돼서 리더십이 와해가 됐다고 얘기하는데 얼토당토않았어요. 리더십이 와해가 된 게 아니고 와해시키려는 이사들이 있다. 장관 앞에서 이런 표현 쓰면 그렇지만 완전 상식 밖이다. 장관이 추천한 인사들이다. 목소리가 높아졌죠.”
며칠 뒤 재단 팀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서류를 내밀었다. 상임이사 3명의 서명이 들어간 이사장 해임안이었다. 그러나 이사장 해임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8월16일 이사회에서 해임안은 부결됐다. 해임안이 부결되자 상임이사 3명은 이사회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자진 사퇴를 고민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직원들이 고발돼 있고 수사 의뢰되어 있는데 (사퇴는)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실속만 챙기자고 도망가버리는 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관과 맞지 않고요.”
임기 만료 하루를 앞둔 지난 17일 정권현 본부장이 해외 출장을 떠났다. 국정감사 기관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는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언론재단 국감이 있던 날을 택해 이사장 결재도 받지 않고 출장을 강행했다. “중요한 출장이면 최소한 보고는 해야죠. 임박해서 보고하면 어떡하냐. 몇 가지 사유를 달아 반려했어요. 그랬더니 그냥 가버린 거예요. 국감 증인 출석을 피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떠나는 사람은 대개 말을 아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슴에 품은 말을 밀어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표 전 이사장과 대화하며 알게 됐다. 퇴임 후 계획을 묻자 그는 “기자로서, 경영자로서 겪은 일들을 정리해서 내놓고 싶다.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아온 데 대한 보답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고 했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