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임명→복귀→해임→임명?… 방문진 혼란 언제까지

3:6→3:5→4:5→4:6→4:5→3:5
한 달간 여야 구도 계속 바뀐 촌극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선 지난 한 달간 이사회 구성이 수도 없이 바뀌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사 해임, 보궐이사 임명, 해임처분 집행정지 등이 잇따르며 기존 3:6이던 여야 구도가 3:5, 4:5, 4:6, 4:5, 3:5로 수차례 바뀌었고, 법정 인원인 9명을 넘어 10명이 방문진 이사로 이름을 올리는 초유의 상황까지 연출됐다. 심지어 이 격변은 현재 진행 중이다. 해임된 이사가 신청한 해임처분 집행정지의 인용 여부에 따라 다시 한 번 이사회 구성이 변할 예정이고, 여기에 더해 야권 성향 이사를 추가로 해임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며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선 지난 한 달간 이사회 구성이 수도 없이 바뀌는 촌극이 벌어졌다. 사진은 지난 11일 법원 결정으로 복귀한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이 서울 마포구 방문진 사무실을 방문해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뉴시스


방문진에선 왜 이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거칠게 결론을 말하자면 정치권력이 MBC를 장악하기 효과적인 방법이어서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방송 장악 시나리오는 대개 다섯 단계로 나뉜다. 지난 2017년 6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간한 백서에 따르면 ‘공영방송 이사 교체 등 사전 정지작업-> 낙하산 사장 투입-> 간부 인사 단행-> 구성원 탄압과 징계-> 비판 프로그램 폐지·축소 및 친정부 보도 일상화’ 순이다.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장을 임명하고, 방통위가 방문진 이사를, 또 방문진이 MBC 사장을 선임하는 구조에서 방문진 이사 다수를 여권 성향으로 구성하는 데만 성공한다면, MBC 장악은 충분히 가능한 작업이었다.


문제는 지난 2021년 8월 출범한 제12기 방문진 이사회가 야권 우위였다는 데 있다. 법상 정해진 규정은 없지만 방문진 이사회는 여권 성향 6명, 야권 성향 3명으로 구성하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다. 문재인 정부의 관점에서 보면 여권 성향 이사들이 다수였던 셈인데, 정권이 교체되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오히려 야권이 우위인 상황이 됐다. 상식적이라면 내년 8월 임기 만료에 맞춰 새롭게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도 가능했을 테지만 현 정부는 기다리지 않았다. 무리한 사유를 들어서라도 야권 성향 이사들의 해임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우선적으로 지목된 이사는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 두 명이었다. 야권 성향 이사 두 명을 해임해야 이사회 구도가 3:6에서 5:4로 여권에 유리해진다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방통위는 지난달 초 권태선 이사장에게 해임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했고 그로부터 열흘 만에 해임 청문을 진행하더니 단 일주일 뒤 해임을 결정했다. 김기중 이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통위는 지난달 14일 김 이사에 대한 해임처분 사전통지를 공고한 후, 지난 11일 해임 청문을 진행하고 단 일주일 만에 해임을 결정했다.

다만 해임 사유는 터무니없었다. 각각 10개, 8개의 해임 사유가 거론됐지만 상당 부분이 방문진 이사회가 심의·의결한 사항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들이었다. 다수결 원칙에 따라 내린 결정의 책임을 개별 이사에게 지운 셈이다. 법원 역시 이러한 해임 사유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1일 권태선 이사장이 신청한 해임처분 집행정지를 인용하며 “신청인이 이사장으로서 방문진을 대표하고 그 업무를 총괄하는 지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사회의 심의·의결을 거친 사안에 대해 이사 개인으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방통위가 제출한 자료들만으로 방문진 이사회가 의사를 결정한 절차에 현저히 불합리한 점이 있었다는 부분도 소명되지 않는다”면서 방문진법의 설립 목적에 따라 이사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통위는 그러나 “자칫 정부의 인사권을 형해화할 수 있다”며 즉시 항고했다. 서울행정법원이 권태선 이사장 후임으로 선임된 김성근 이사의 임명을 집행정지한 데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로써 당분간 방문진 이사들과 방통위 간 법적 다툼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선 또 다른 야권 성향 이사를 해임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MBC 소수 노조인 MBC노동조합(제3노조)은 지난 20일 권태선 이사장과 김석환 이사를 김영란법 위반 의혹 등으로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지난해 4월 이후 권 이사장이 총 53회에 걸쳐 업무추진비로 집행한 492만원, 또 김 이사가 총 12회에 걸쳐 사용한 115만원이 김영란법을 위반한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이사회 운영만으론 해임 사유가 될 수 없자 개인 비위 의혹을 제기한 셈인데, 앞서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의 경우 같은 의혹으로 권익위에 고발당한 후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마저 기각당한 바 있다. KBS에선 이후 여권 성향 이사들이 우위가 돼 지난 12일 김의철 KBS 사장이 해임됐다.


공영방송을 연구한 학자들은 방문진 역사가 그야말로 ‘정치투쟁의 기록’이었다며 자가당착을 벗어나 시청자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방법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지난 4월 본회의에 부의된 방송관련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9인인 방문진 이사회를 사회 각 분야 대표성을 반영한 21명의 ‘공영방송운영위원회’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중 국회 추천 몫은 5명으로, 정치권의 입김을 최대한 덜어내는 방식이다. 다만 지난 21일 본회의 상정 가능성까지 점쳐졌던 방송관련법 개정안은 결국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다. 언론현업·시민단체들은 지난 22일 낸 공동성명에서 “법안의 핵심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종속성과 후견주의를 타파하는 데 있다”며 “무슨 수를 동원해서라도 9월내에 방송관련법 처리를 완수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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