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가 북한 핵개발자라고요?"

[인터뷰] 미 연수중 동명이인 해프닝 황석하 부산일보 기자

풀브라이트 중견 전문가 장학 프로그램인 험프리 펠로우십 저널리스트 부문 참여자인 황석하 부산일보 기자는 최근 미국에서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연수 첫 2개월 기간을 캔자스주 로렌스에서 홀로 보낸 그는 지난 7월, 가족과 함께 앞으로 10개월을 머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집을 구하고 있었다. 계약을 했고 보증금과 한 달 치 임대료만 보내면 되는 상황. 그런데 일주일 전 아내가 송금한 돈이 납부기한 사흘을 남긴 시점까지 미국 계좌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재촉하고, “미국 은행 정보와 이름 철자까지 다시 한 번 확인”했지만 이상은 없었다.

험프리 펠로우십 저널리스트 부문 참여자로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황석하 부산일보 기자가 지난 7월 캔자스주립대에서 연수 중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모습. /황석하 제공


그날 밤 아내와 통화에서 이유를 알게 됐다. ‘Seok Ha Hwang'이란 이름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송금한 돈은 중개은행을 거쳐 미국 계좌로 들어오는데 북한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어 중개은행이 신원 확인을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동명의 북한인은 핵무기 개발에 관여했고, UN 안전보장이사회가 2009년 제재를 가하기도 했던 인물. 한국의 은행을 통해 중개은행에 신원 확인을 해주고, 황 기자는 미국 쪽 은행 직원과 상담을 했지만 해결됐다는 확답을 듣진 못했다. 하루 뒤 돈을 받으며 문제는 해결됐지만 자칫 돈을 못 내거나, 더위로 유명한 피닉스의 은행에 직접 찾아가 수표를 직접 전달해야 할 뻔 했다.


이 같은 해프닝은 지난달 말 연수 프로그램 관련 블로그에 그가 겪은 일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그는 “솔직히 북한의 존재가 이번처럼 제 개인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크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며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가 42년 후 미국에서 그 이름 때문에 손자가 곤란을 겪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라고 적었다. 지난 14일 본보와 통화에서도 그는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편집국 어떤 선배가 당시 기사를 보고 ‘북한에도 황석하가 있네’라고 했는데 그게 갑자기 떠오르더라”면서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을 쏴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진 않았는데 한국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서 황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먼 나라에서 여러모로 새 경험 중인 그는 내년 6월까지 1년 간 미국에 머문다. 그가 참여한 험프리 펠로우십은 전문직업군의 리더십 개발을 목표로 하는데, 이번 펠로우 중 한국인은 7명이고, 언론인은 황 기자를 포함해 2명이다. 앞서 캔자스주립대에서 어학 코스를 밟았고, 지난달부터 애리조나주립대 월터크롱카이트 저널리즘스쿨에서 본 연수에 참여하고 있다. 아내, 아이와 피닉스에 머물며 학생 신분으로 과목 2개를 듣고, 자체 연구계획을 실행 중이다. 그는 “타국 기자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우수한 사람을 초빙해 네트워크를 꾸릴 수 있게 해주는 점이 크게 도움이 된다”면서 “언어 문제가 가장 어렵다. 연수를 했다지만 영어를 잘하는 타국 기자들, 현지 학생과 같이 수업을 듣고 토론하는 게 쉽진 않다. 오늘만 해도 취재기획서를 서로 피드백 해주는 수업을 했는데 스펠링 틀린 게 있어서 첨삭을 당했다”고 했다. 이어 “프로그램 자체가 타이트해서 상상했던 연수는 아니다(웃음)”라고 덧붙였다.


2009년 부산일보 입사로 기자 일을 시작한 그는 사회부에서 오래 일하고 편집부, 경제부, 디지털부를 거쳐 현재 정치부 소속이다. 그간 ‘이달의 기자상’만 10회 이상 수상했고, 2015년엔 ‘한국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연수 기간 연구주제로 관심사였던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선택해 ‘늦깎이’ 공부 중이다. 그는 “내러티브 방식이 보편화된 미국에서 여러 작가, 기자들을 만나고 배워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에 대한 지식을 다른 분들과 공유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며 “마흔 넘어 유학생활이 쉽지 않지만 여러모로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인원도 부족한데 1년씩 시간을 빼도록 해준 선·후배들, 회사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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