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지속한 정율성 공원 사업, 때아닌 이념논쟁… "광주 고립시키지 말라"

광주전남 지역언론들 우려 목소리

“나라가 통째로 뒤흔들리는 양상이다.”(무등일보) “21세기 탈냉전시대를 거스르는 편협한 생각과 이분법적 사고가 어처구니없다.”(전남일보)


광주시가 추진 중인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을 두고 정부가 ‘이념 전쟁’의 불을 붙이자 광주·전남 지역 언론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광주에 ‘색깔론’을 덧씌우고 이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시도를 비판하며 사업에 관한 결정은 광주에 맡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9일자 광주매일신문 1면과. 광주·전남 지역 신문들은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둘러싼 논란을 연일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있다.


광주 태생의 ‘중국 3대 음악가’ 정율성의 생가에 역사공원을 짓는 사업이 때아닌 이념 갈등에 휘말린 건 2주 전. 극우 정당인 자유민주당이 지난달 22일 광주 시내 곳곳에 정율성 공원 조성을 비판하는 현수막을 게시하자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때맞춰 자신의 SNS에 정율성 공원 계획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글을 올리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박 장관은 이어 28일 ‘호남학도병’ 현충 시설 건립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정율성은 우리에게 총과 칼을 들이댔던 적들의 사기를 북돋웠던 응원대장이었다”고 비판하며 “단 1원도 대한민국의 가치에 반(反)하는 곳에 사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광주·전남 지역신문들은 거의 매일 1면 머리기사 등 주요 기사로 정율성 공원을 둘러싼 논쟁을 보도하고 있다. 이들 신문에 따르면 광주에선 연일 찬반 논쟁과 거리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보훈부의 법적 대응과 정부의 합동감사 예고에 광주시를 상대로 한 정부 부처와 국회 등의 자료 요청까지 쇄도하면서 광주시는 그야말로 “뒤숭숭한 분위기”다.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은 2000년대 중반부터 광주시가 추진해온 정율성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박민식 장관이 SNS에 쓴 것처럼 “안중근, 윤봉길도 못 누리는 호사를 누려야 할 만큼 그가 대단한 업적을 세웠”기 때문은 아니다. 광주시는 애초에 “한·중 우의 인물”로 정율성을 주목했고, “한일월드컵을 전후해 밀려드는 중국 관광객을 겨냥한 문화정책의 하나”(광주MBC)로 사업을 검토했다. 중앙정부에서도 보수 정권인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한중 우호, 국익 차원에서 국가가 주도”해 정율성 기념사업을 벌여왔다. 관련 사업에 상당 부분 국비가 지원됐다는 게 그 방증이다.

지난달 29일자 남도일보 1면. 광주·전남 지역 신문들은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둘러싼 논란을 연일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있다.


남도일보는 지난 1일 “광주지역 정율성 관련 사업 7건 중 5건에 국비가 쓰인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특별교부세 등 수억원의 국비가 지원된 사실을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국비가 투입된 사업에 정부·여당과 박민식 보훈부 장관이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을 사실상 ‘반국적 사업’으로 규정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당착적인 궤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전했다. 전남일보도 지난달 29일 기사에서 십수년간 지속한 기념사업에 정부가 느닷없이 제동을 걸어 당혹스러운 상황이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수·진보진영 논리에 달라지는 정책 탓에 애꿎은 광주·전남 현안들만 중심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주·전남 언론은 정율성 사업은 중앙정부가 시작해 지자체(광주시)가 이어받은 사업으로, 더는 논란을 키워선 안 된다고 대체로 일관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광주매일신문은 지난달 29일 사설에서 “특히 5·18 민주도시 광주가 다시 고립되는 상황을 용납 못한다”고 했다.


다만 이번 논란으로 촉발된 정부 여당의 이념 공세가 광주시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읽힌다. kbc광주방송은 내년도 광주광역시의 국비 예산안이 지난해 대비 972억원이나 줄어든 것에 정율성 논란이 미친 영향을 주목했다. 광주방송은 “‘정율성 역사공원 논란’ 뒤 국민의힘 광주시당과의 예산정책간담회가 취소되고, 정부·여당과 소원해진 관계 회복이 관건”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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