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속 옛날잡지 영상화… 이야, 보물창고가 여기있었네

[인터뷰] 영상콘텐츠 '옛날잡지' 진행
장회정·이유진·김지윤 경향신문 라이프팀 기자들

경향신문 사옥 5층. 비밀통로 같은 복잡한 공간을 헤매다 보면 DB관리팀이 관할하는 자료실을 발견할 수 있다. 77년간 경향신문이 발행한 모든 기사와 사진들이 보존된 이곳은 “콘텐츠의 보고인 동시에 콘텐츠의 무덤”이기도 하다. 이 자료실에 “잡지 경력 도합 60년”의 기자들이 모였다. ‘레이디경향’ ‘TV타임즈’ ‘휘가로’ 등 자료실에 잠들어있는 옛날 잡지들을 꺼내 읽으며 잊혀가던 그 시절에 대한 회포를 풀기 위해서다. 자료실을 ‘보물창고’라고 말하는, 경향신문 영상 콘텐츠 <옛날잡지>를 진행하고 있는 장회정·이유진·김지윤 라이프팀 기자들이다.

‘같이 보는 잡지’를 콘셉트로 한 영상 콘텐츠 <옛날잡지>를 진행하는 경향신문 라이프팀 장회정 팀장(왼쪽부터), 김지윤·이유진 기자. ‘X언니’라는 활동명으로 등장하는 장 팀장에 따르면 “라면은 남이 먹는 걸 한 젓가락 뺏어먹는 게 더 맛있듯, 잡지도 옆 사람이 넘길 때 껴서 보는 게 더 재밌다.” 사진은 옛날잡지 유튜브 영상 캡쳐.


옛날잡지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잡지에 실린 기사를 세 기자가 함께 읽으며 시대를 풍미한 인물, 그때 그 사건의 비하인드 등을 담아내는 영상이다. 솔직하고 어쩌면 적나라한 당시 기사 스타일과 잡지에 기사·사진을 보도했던 기자들에게 뒷이야기를 확인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X언니’(장회정), ‘뉘진스’(이유진), ‘쫑알이’(김지윤)라는 활동명으로 영상에 참여하는 기자들 모두 레이디경향 에디터로 활동했던, “전직 잡지쟁이”다. 1982년 창간해 2016년 종이발행을 중단한 레이디경향 등 영상으로 소개되는 잡지들 모두 추억으로만 남게 된 기록들이다. “잡지만큼 깊고 진한 향기를 내는 콘텐츠가 점점 사라지는 시대” 그래서 기자들은 “이런 기사들이 자료실에 그저 잠들어있는 점이 안타까웠다.”(이유진 기자) 라이프팀 기자들이 의기투합해 옛날잡지를 기획한 이유다.


“회사에 제출한 기획 제안서에 1994년 8월호 레이디경향 주요 기사 리스트를 인용했는데 ‘일 년 치 기사냐’는 반응이 나왔어요. 당시 톱스타의 동거 스캔들 관련 인터뷰부터 박근혜 뒤에 있는 미스터리 인물인 최태민 딸의 수기·인터뷰, 고현정의 웨딩 스토리,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 노재헌의 홀로서기, OJ 심슨 사건, 미혼여성 재테크 성공법 등이 월간 잡지 한 권에 담겨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 점이 채널 개설에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장회정 팀장)


영상은 일주일에 한 편 올라오지만 촬영은 격주에 한번, 2회분을 녹화한다. 세 기자가 한 편씩 호스트를 맡아 주제를 찾고 대본을 작성하는 식이다. 각자 시간이 날 때마다 자료실에 들러 아이템을 찾는데 현재 상황에 맞는 ‘뉴스거리’를 전하기 위해 추가 취재도 한다. 원래 하던 본업과 함께 영상 작업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누구보다 잡지에 대한 애착이 강한 기자들이기에 이 과정들은 또 하나의 귀한 경험이 되고 있다.


“레이디경향 휴간 소식을 육아휴직 중 접했어요.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은 기분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잡지를 다시 읽을 때마다 ‘왜 떠났는데!’라며 남아있는 미련을 부여잡는 마음이죠.(웃음) 한번 자료실을 들어가면 2시간 정도 내리 책을 읽어요. 어느 호를 꺼내도 재미있는 기삿거리가 있거든요. 사실 신문, 텍스트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을 요즘 트렌드인 영상에 맞게 포장해보고자 시도하고 있죠.”(김지윤 기자)


지난 1월 첫 영상을 선보인 이후 옛날잡지는 조금씩 반응을 이끌어내며 ‘레트로 콘텐츠’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 중이다. 특히 ‘화성인 유리마’ 편 미리보기 기사는 네이버 포털에서 60만뷰 이상,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도 높은 조회수가 나왔다. “높은 조회수가 능사는 아니지만” 유튜브 콘텐츠 파생 기사로 성과를 보인다는 점은 예상하지 못한 긍정적 효과다.


옛날잡지 촬영과 편집을 담당하는 유명종 뉴콘텐츠팀 PD도 “구독자분들이 그때와 지금이 왜 다른지 등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 주기도 하고 당시를 회상하는 댓글들을 많이 다는데 그 모습을 보며 레트로 콘텐츠의 공감성과 호소력을 느끼고 있다”며 “아카이브 된 잡지와 사진이 있기에 저작권 측면에서 콘텐츠 제작이 조금은 자유롭다”고 말했다.
앞으로 옛날잡지가 다룰 아이템은 무궁무진하다. 옛날 스타들의 근황을 직접 전하는 아이템, 책장 넘기는 소리만 남기고 잡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의 ‘ASMR’ 영상 등 옛날잡지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를 구상 중이다. 무엇보다 옛날잡지를 통해 독자들이 여성지에 대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통 여성지라고들 말하지만, 엄밀히는 ‘여성종합지’이고, 과거에는 교양지로도 통했어요. 여성지하면 ‘임팩트’ 강한 스캔들 기사로만 기억하는 분들이 많은데 양질의 발굴 기사나 아름다운 문장이 가득한 기사, 역사적 사료로도 가치가 높은 기사도 많습니다. 우리 콘텐츠가 잡지 선배들이 피땀으로 쓴 좋은 기사를 알리는 하나의 창구가 됐으면 좋겠어요.”(장회정 팀장)

박지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