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붕괴 원하나… 무책임한 수신료 분리

[내달 현실화 전망, 각계 우려 쏟아져]
정부, 방송법 상충하는데도 강행
BBC 등 세계 8대 공영방송 성명

KBS 기협 "공영방송의 존재 가치
국민에 확신 줬는지, 자문해봐야"

방송통신위원회가 27일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의 입법예고 절차를 마쳤다. 그사이 법원 결정으로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의 업무 복귀가 무산되면서 당장 다음달 안에 분리징수 현실화 전망이 나온다. 급하게 진행되는 분리징수 추진에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KBS 내부에선 사장 사퇴 요구와 함께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 16일 입법예고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국민 의견을 26일까지 접수했다. 개정안은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통합징수하는 현행 방식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입법예고 기간은 통상 40일 이상이지만 방통위는 긴급 사안이라는 이유를 들어 10일만 적용했다. 지난 열흘간 개정안과 관련해 국민참여입법센터에 접수된 의견은 모두 4712건이다. 이 가운데 공개 의견은 2819건, 비공개 의견은 1893건으로 집계됐다.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언론인권센터 등 42개 언론·시민단체가 지난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급박하게 추진하는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중단하고 국민적 공론장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KBS가 접수된 의견을 자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공개 의견 중 약 90%(2520여건)가 분리징수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한다는 의견은 약 10%(280여건)였다. KBS는 27일 이 같은 분석 결과를 공개하며 “방통위는 방송법 시행령의 졸속 개정을 보류하고 입법예고에서 제기된 국민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신료 분리징수가 눈앞에 다가오자 KBS는 법적 대응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방송법 시행령 개정 절차를 정지해달라며 헌법재판소에 가처분을 신청한 데 이어 26일엔 입법예고 기간 단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KBS는 개정안이 실제로 공포되면 개정안 자체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도 고려하고 있다.


현시점에선 수신료 분리징수가 진행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정안 공포까지 남은 절차는 방통위 의결,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의결, 대통령 재가 순이다. 현재 방통위 상임위원 구성은 여야 2대1 구도다. 개정안이 의결안건으로 상정되면 야권 위원 1인이 반대하더라도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된다. 방통위 안건 상정은 다음달 초로 예상된다.


당초 임기가 7월 말까지였던 한 전 위원장(야권 인사)의 업무 복귀가 무산되면서 KBS로선 시간을 벌 기회를 잃었다. 한 전 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낸 면직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을 지난 23일 법원이 기각했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강동혁)는 TV조선 재승인 점수 고의감점 사건으로 기소된 한 전 위원장이 직무를 계속 수행하면 “방통위 심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공무집행의 공정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정부가 급하게 추진하는 수신료 분리징수에 우려는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이 지난 5일 온라인 설문조사 방식의 ‘국민참여토론’ 결과를 반영해 분리징수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법령 개정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한 달이 채 소요되지 않았다. 특히 시행령 개정안은 수신료 납부 의무와 수신료 미납자에게 추징금 부과를 명시한 상위법(방송법)에 상충하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대책 없이 분리징수만을 밀어붙이고 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26일 42개 언론·시민단체가 수신료 분리징수 중단과 국민 공론장을 요구하며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인식을 비판했다. 권 처장은 “프랑스는 수신료를 폐지하는 대신 없어진 재원을 세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일본은 TV수신료를 인하하고 있지만 온라인 수신료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며 “대통령실이 분리징수를 추진하면서 예시로 든 두 국가 모두 공영방송 재원에 대한 대안을 함께 제시했다. 분리징수가 시작되면 징수율이 떨어질 텐데, 정부는 그에 대한 대안부터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시민단체들이 정부를 규탄하는 성명을 잇달아 발표한 것뿐 아니라 세계적인 공영방송사들도 공동성명을 발표해 우려를 표명했다. 영국 BBC, 프랑스 텔레비전, 독일 ZDF 등 세계 8대 공영방송사 사장 협의체인 GTF(Global Task Force for public media)는 지난 22일 “방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KBS는 재정적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어 공적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다”며 “허위정보와 여론 양극화가 심해지는 시기에 많은 공영방송사가 큰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런 때일수록 민주주의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인 공영방송을 약화시켜선 안 된다”고 했다.


KBS 내부에선 분리징수 사태에 책임을 지고 김의철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상당한 상황이다. 지난 2주 동안 KBS 직원 1100여명을 비롯해 방송기술인협회, 경영협회, 아나운서협회, 영상제작인협회가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23일 KBS PD협회의 회원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65.2%였다.


KBS 기자협회가 지난 23~26일 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사퇴 찬성 47.37%, 반대 52.63%로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KBS 기자협회는 투표 결과와 별개로, 이번 사태를 자성의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KBS 기자협회는 26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 과정에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이 확인됐다. 시청자들이 공영방송 뉴스의 효능감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볼 것”이라며 “공영방송의 존재 가치에 대해 국민에게 확신을 주었는지 자문해야 한다. 우리들부터 수신료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했는지 냉정하면서도 겸손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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