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려고 기사 쓰나봐요"… 오늘도 산으로 간다

[인터뷰] 기사에 쓸 삽화 직접 그리는 윤성중 월간 산 기자

윤성중 월간 <山(산)> 기자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단연 화제의 인물이었다. 기사마다 독특한 삽화들이 여러 장 첨부되는데,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윤성중 기자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그림 그리기 위해 기사 쓰는 기자’, ‘저작권 논쟁 피할 수 있는 참기자’ 등으로 그를 부르며 뜨거운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가 언제부터,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15일, 월간 산 사무실이 있는 서울 마포구에서 윤 기자를 만났다.

기사마다 독특한 삽화를 첨부해 온라인 상에서 화제의 인물이 된 윤성중 월간 산 기자. /윤성중 제공


이날은 마침 월간 산의 마감 주간이었다. 월간 산은 달에 3주는 취재를, 1주는 마감을 해 잡지를 만든다. 기자는 그를 포함 총 4명. 편집장까지 더해도 5명인 조촐한 편집부지만 이들은 모두 산이라면 진심인 사람들이다. “편집장이 ‘지금 설악산 다녀와’ 하면 거리낌 없이 정상을 찍고 올 수 있을 정도의 체력과 마음가짐”을 갖춘, 범상치 않은 기자들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약골”이라는 윤 기자도 지리산 성삼재~중산리(33.5km) 코스를 12시간 정도면 돌파한다. 일반인은 1박2일로도 어려운 구간이다.

윤성중 월간 산 기자의 연재물 ‘21세기 HEAVY DUTY’ 속 삽화. /윤성중 제공


그는 지난해 1월, 월간 산에 입사했다. 지난 2009년 기자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월간 산을 꿈꿨지만 “누군가 나가야 사람을 뽑는”데다, 평균 근속 연수가 20년이 넘다 보니 쉽게 기회가 오지 않았다. “월간 산이 역사도 오래됐고 등산 잡지 중엔 최고거든요. 아마 등산 잡지사 경험했던 기자들 중에 월간 산에 안 들어오고 싶었던 기자는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쉽게 자리가 안 나서, 제 위에 선배는 산신령이 점지를 해줘야 들어올 수 있다 하더라고요.” 뒤늦게나마 잡은 기회가 고마워서인지 그는 “월간 산에서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준” 편집장과 편집부 식구들에 꼭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다만 그의 이력을 봤을 때 월간 산 역시 적합한 인재를 뽑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윤 기자는 고등학교, 대학교 산악부를 거쳐 등산학교 거벽반까지 수료한 ‘골수산꾼’이다. 어린 시절, 산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등산을 다녔던 그는 고등학생 때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완전히 취미를 붙여, 이후 북한산 인수봉이나 도봉산 선인봉에서 매 주말을 보냈다. 방학 땐 설악산에서 2주간 살았는데, 암벽 등반을 좋아했던 그에게 설악산은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산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설악산을 말한다. “여길 가면 선배랑 놀았지, 저길 가면 선배에게 혼났었지, 이제는 그런 추억이 잔뜩 묻어나는 곳”이 됐다.


취미였던 산을 업으로 삼게 된 계기는 우연찮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백수 시절, 서점에 가서 월간 <사람과산>을 들쳐봤는데 마침 편집부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가 있었다. “‘산악부 우대’라고 쓰여 있어서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들고 회사가 어떻게 생겼나 구경도 할 겸 직접 갔어요. 원서만 내고 올 생각이니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갑자기 저를 붙잡고 왜 왔냐고 하는 거예요. 그러다 그 자리에서 바로 면접을 봤고 합격을 했어요. 선후배들 사이에선 ‘슬리퍼 신고 면접 본 친구’라고 유명했죠.”


등산 잡지 기자로 처음 일을 시작한 그는 이후 인터넷 언론사, 마케팅 회사, 광고 회사 등을 거치며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그리고 2021년 7월, 이재진 편집장의 제안으로 월간 산에 ‘등산시렁’과 ‘21세기 HEAVY DUTY’ 연재를 시작했다. 월간 산에 그의 독특한 삽화가 실린 것도 그 즈음이다. “대학교에서 사진과를 전공했는데 찍는 것만으론 부족해서 시각디자인과 수업을 들었거든요. 그때 그림을 그렸는데 좋은 점수를 받았고 자연스레 취미가 됐어요. 그 낙서들이 등반대회 포스터가 되고, 삽화가 됐죠. 처음 삽화를 그린 건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였는데, 그림을 보여드리니 편집장도 괜찮다 하셔서 그때부턴 사진이 애매한 기사엔 무조건 그려서 올렸어요.”


이 공정이 가능한 건 그가 정말 빠르게 그림을 그려서다. 윤 기자는 보통 20분, 아무리 늦어도 한 시간이 채 안 걸려 그림을 완성한다.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조그만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고 포토샵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렇게 완성된 그의 그림은 데생이나 소묘 등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아서인지 색감이나 표현 방식 면에서 어딘가 자유롭다. 정의를 내리기도 어렵다. 윤 기자 역시 “그냥 좋아하는 스타일로 그린다는 설명밖엔 할 수 없다”고 했다.
확실한 건 쌓이고 쌓인 그림들이 그만의 확고한 개성이 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윤 기자는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려나갈 계획이다. “손이 다치지 않는 한 계속 그릴 생각이에요. 언젠가는 컴퓨터 말고 아크릴이나 유화로도 한 번 그림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그 그림들로 전시를 해보는 것,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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