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고 붙이고 칠하고… 사진으로 '일사정리'

[인터뷰] 장승윤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

지난 9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장승윤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은 백팩에 2절 화판가방, 비닐 재질 장바구니까지 빈손이 없는 채였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짐에서 A0부터 A2까지 사이즈의 종이판이 수십 장 나온다. 두께감 있는 판엔 잘린 신문조각들이 덕지덕지 붙었다. 다양한 인물과 건물, 무기 사진, 로고와 타이포 같은 이미지, 기사제목과 본문이 오려져 매번 어떤 구도와 질서에 따라 배치된다. 색종이와 수채·유채 물감을 덧칠하고, 마른오징어나 마스크 같은 오브제를 올리기도 하는 ‘콜라주’ 기법이다. 사진기자가 웬 예술작품을 들고 왔나 싶지만 이 판들은 ‘일사정리’(일주일 사진정리)란 디지털 연재에 사용된 것들이다.

장승윤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은 디지털 연재 ‘일사정리’를 지난 2021년 6월부터 2년째 이어오고 있다. 주요 신문의 사진과 글을 찢어 ‘콜라주 작품’ 형태로 만들어 한눈에 보는 시각뉴스를 제공한다. 사진은 그간 해온 콜라주 판형을 펼쳐놓은 장 기자의 모습. /장승윤 제공


이 판을 카메라로 찍어 올리고 설명한다. 한 주간 주요 신문의 사진과 글을 재편집해 한눈에 보는 시각뉴스라면 사진을 주제별로 묶어 나열, 요약해도 된다. 장 기자는 “일단 제가 재미가 없더라”고 했다. “작품도 아니고 작가를 꿈꾸는 것도 아닌데요. 신문이 우리 일을 기록하는 거고 역사인데 매일 써도 금방 날아가고 나중에 인터넷으로 보면 그 느낌이 아니잖아요. 제 본업이 기자니까 새로운 방식으로 기록하고 싶었어요. 많은 신문들이 기록하지만 제 안에서 몇 주, 몇 달을 메주처럼 묵혀서 제 나름의 기록을 하고 싶다는 거고요.”


오리고, 붙이고, 휘고, 펴고, 그리고, 칠해서 만드는 연재는 ‘사명’과 ‘재미’ 어느 목표여도 좀 과한 에너지와 시간을 요구한다. 일단 일요일 오전 11시 마감을 위해선 매일 재료를 찾아 “고기가 상하지 않게 소분”해야 한다. 올 초 사진부 데스크를 맡은 후엔 밤 10시쯤부터 회사에서 신문을 찢기 시작한다. 집에서 ‘찍찍’ 큰 소리가 나면 아내에게 한소리 듣거나 아이 잠을 깨울 수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 한다. 집에 도착하면 조심스러운 가위질로 잘게 오려 보관하고 평일을 보낸다. 금·토요일이면 ‘비상’이다. 아이와 놀아주며 짬짬이, 아니면 재운 후부터 제작과 마감에 집중한다. 소분을 안 해두면 난감해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2021년 6월 연재를 시작해 만 2년. 매주 20여 시간을 들여 콜라주판 2~5개를 지난해 연말까지 총 200여개 만들었고, 이후부턴 세지 않았다.

장승윤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은 디지털 연재 ‘일사정리’를 지난 2021년 6월부터 2년째 이어오고 있다. 주요 신문의 사진과 글을 찢어 ‘콜라주 작품’ 형태로 만들어 한눈에 보는 시각뉴스를 제공한다. /장승윤 제공


“제일 힘든 건 마음에 안 드는데 내보내야 할 때인데, ‘이럴 거면 하지마’ 댓글이라도 달리면 ‘진짜 바빠서요. 다음주엔 열심히 할게요. 통화 한번 하실까요?’란 말이 절로 나와요.(웃음) 예술가는 아니지만 늘 완성도가 고민스럽죠. 마감하면 ‘이제 접자’ 생각하다가 또 똑같이 하면서 저도 욕심을 내는데요. 예술대 나온 본능을 이렇게 푸는 건가 싶기도 해요.”


신문을 주재료로 한 연재라 신문 구하기가 일이다. 국회를 출입하던 시절엔 큰 걱정이 없었지만 변수는 생긴다. 출장에서 복귀해 회사로 갔더니 며칠 치 신문이 없다면? 회사 사옥 지하 4층 폐지를 모으는 곳으로 가서 챙긴다. ‘폐지수집 부업’ 의혹(?)을 받으며 동료들에게 ‘소중한 거다, 버리지 말라’고 하소연한다. 신문을 구하러 휴일에 집이 있는 경기도 고양에서 광화문 회사까지 왕복하던 때도 있었다. “도저히 아닌 것 같아서 토요일자 신문을 사기로 했는데 한 달에 20~30만원이 들어서 그만뒀어요. 이러면 안 되는데 ‘신문이 왜 이리 비싸지’ 싶더라고요.(웃음) 문화일보(살구색 지면)를 좋아해요. 엣지를 표현하기 좋은 재료예요. 동아일보는 구하기 쉬워서 같은 이미지 여럿이 필요할 때 좋고요.”

장승윤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은 디지털 연재 ‘일사정리’를 지난 2021년 6월부터 2년째 이어오고 있다. 주요 신문의 사진과 글을 찢어 ‘콜라주 작품’ 형태로 만들어 한눈에 보는 시각뉴스를 제공한다. /장승윤 제공


94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갔다가 자퇴하고 1999년 사진학과에 입학하며 이 길에 접어든 사진기자는 2002년 중앙일보 매거진에 입사하며 언론계에 들어왔다.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으로 이직해 시사 주·월간지 화보를 담당했고, 2011년부터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일하며 청와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출입처, 다수 수상 경험을 했다. 스스로 “투 머치 콘셉트”라고 말하는 기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할 일도 많은 사람이다.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걸 말해준다고 생각 안 한다”는 사진기자는 2021년 코로나19로 인해 폐·휴업한 명동, 종로거리 200여개 상가를 일일이 5시간 동안 찍고 편집해 사진 한 장에 쌓아올려 담는 시도를 했다. 사진 관련 에세이 코너 <사談진談>, <장승윤의 사진 사람 사랑> 등에도 적극 참여했다. 회사에선 ‘한 주에 하나만 하라’는데 “일주일 동안 벌어지는 일이 엄청 많은데 아니라고 본다”며 굳이 고생을 사서 하는 지금과 같다.


“마감할 때만 엉덩이를 의자에 대던” 21년차 사진기자는 예전과 다르게 만든 제작물을 모아 3~4년 내 전시회 개최를 구상하고 있다. 그때까지 안 된다면 딸과 함께 캠핑장에서 다 태워버리고 콜라주는 안 할 생각이다. “제가 만든 걸로 사람들이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고, 웃기거나 장난기 있는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이걸 만들다 보니 신문 80~90%는 안 좋은 뉴스들이고 저도 그런 정리만 했더라고요. 아직 만족스러운 게 없는데, 다 재로 날리면 거창한 걸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와이프가 외국인인데 ‘나 이거 안다, 잘 했다’고 할 땐 뿌듯하더라고요. 옆 사람 인정이 제일 좋고, 또 이미지로 전달이 된 거잖아요. 일단 다음 주엔 ‘좋은 뉴스’를 한번 모아보려고요.(웃음)”

최승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