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변화의 씨앗… 정책 영향주는 리포트 해야죠"

[인터뷰] 미 국무부 미디어 협력 프로그램 선정된 현인아 MBC 기자

현인아 MBC 기자가 미국 대사관의 연락을 받은 건 지난 3월 초였다. 처음엔 뜬금없다 생각했다. 다른 취재 때문에 미 대사관에 전화번호를 남긴 적은 있지만 그건 1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기후환경팀에서 일하는 그가 대사관과 연락할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전화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대사관 직원은 미국 국무부 외신기자클럽(FPC)에서 주관하는 미디어 협력 프로그램이 있다며, 현 기자가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에 선정만 되면 미국에서 열흘간, 원하는 주제를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다고 했다. 관심 있는 인물, 연구소, 기관 등 섭외와 더불어 왕복 항공권을 제외한 모든 경비도 미 국무부에서 제공한다고 했다.

20년간 근무한, 최장수 기상캐스터라는 수식어를 뒤로 하고 현인아 MBC 기자는 지난 2018년, 기자로 전직해 기상팀장이 됐다. 지금은 기후환경팀에서 현장 기자로 뛰고 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현 기자는 곧바로 기후변화와 관련된 취재 계획안을 적어 냈다. 하지만 한 달이 훌쩍 지나도록 연락은 없었다. 그는 내심 떨어졌나보다 생각했다. 한국 취재진이 실제로 뽑힌 적은 드물었다는 얘기도 들은 터였다. 그런데 지난달 중순, 현 기자의 취재 계획이 선정됐다는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덕분에 그는 오는 10월, 미국에서 2주간 기후변화와 관련된 취재를 한다.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기후변화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지금껏 움직임이 없었던, 그리고 이제야 서둘러 변화하는 미국의 모습을 그는 꼼꼼히 취재해 올 연말 방송으로 내보낼 계획이다.


현 기자는 “미국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그 현장을 담는 것과 동시에 이들이 움직이면 무엇이 바뀔 수 있을지, 또 우리나라엔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를 좀 폭넓게 보고 싶다”며 “너무나 좋은 기회를 잡게 돼 영광이다. 잘 하고 와야 다른 분들이 또 가실 수 있으니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좋은 기회는 그냥, 저절로 생기진 않는다. 누구보다 독특한 삶의 궤적을 그린 그이기에 우연찮게 찾아온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현 기자에겐 유독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최초의 기상캐스터 출신 기자이며 지상파 최초의 여성 기상팀장이고, MBC에서 최초로 결혼과 임신을 경험한 기상캐스터이기도 하다. “여자 기자는 너무 안 뽑던” 시절, 아나운서가 되려 했으나 매번 최종에서 고배를 마셨던 그는 세 번의 거절 끝에 1997년 기상캐스터로 MBC에 입사했다.

20년간 근무한, 최장수 기상캐스터라는 수식어를 뒤로 하고 현인아 MBC 기자는 지난 2018년, 기자로 전직해 기상팀장이 됐다. 지금은 기후환경팀에서 현장 기자로 뛰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기상캐스터로서의 삶은 역시나 힘들었다. 계약직이란 신분 때문은 아니었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오히려 계약 연장을 하지 않으면 회사가 손해라 생각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기상은 기본적으로 과학이잖아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문과생인 저는 기본 이해가 너무 떨어져 그런 것들과 싸움을 해야 했어요. 한편으론 기상 자체의 불확실성도 저를 괴롭혔죠. 처음엔 산수처럼 기상을 풀어가서 어떤 현상이 나타나면 이게 답일 것이다, 외워놨단 말이에요. 그런데 다음엔 다른 게 답인 거예요. 지금 이 현상에 여러 원인이 있고 그 중 어떤 것이 더 기여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데, 저는 1+1은 2였으면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때로는 3이나 1이 나오니까 그게 저와 너무 맞지 않았어요.”


그 불확실성이 싫어 그는 기상캐스터 시절부터 늘 취재를 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아 늘 기상청에, 교수들에 전화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기상캐스터지만 날씨 관련 기사도 썼다. 지난 2018년, 기자로 전직해 기상팀장이 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년간 근무한, 최장수 기상캐스터라는 수식어를 뒤로 하고 그는 지난해부턴 신설된 기후환경팀에서 현장 기자로 뛰고 있다. “기자가 돼서 가장 좋은 점은 전문가들이 저만을 위한 ‘테드’ 강연을 해준다는 점이에요. 열심히 노력해 얻은 지식을 다 얘기해주니 그게 정말 기쁘고 재밌습니다. 이제야 내가 생각보다 이과적인 사람이구나, 호기심이 무궁무진한 사람이구나라는 걸 느껴요.”


기자가 된 후 그는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현장을 누비고 있다. 재생가능에너지(renewable energy)를 100% 사용하는 기업을 만들자며 민간 캠페인을 시작한 다국적 비영리단체 ‘RE100’ 대표를 국내 최초로 인터뷰하는가 하면 지난해 9월 힌남노 태풍이 왔을 땐 태풍의 특이점을 쉽게 풀어낸 보도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년여의 기다림 끝에 현장 취재가 어려웠던 밤섬에 들어가 변화상을 보도한 기사 역시 최근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기상캐스터로 살아온 시간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사실 확인을 병적으로 하는 습관, 또 방송이 두렵지 않은 점은 방송인 생활을 오래 한 덕분이죠. 내가 알게 된 사실을 남에게 말해줄 때의 그 즐거움이 있는데, 다만 일회성 방송으로 그치기보다 정책 등에 영향을 미치는 리포트를 하고 싶습니다. 기사 하나가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책 입안자들, 기업, 또 시민들이 눈을 뜨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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