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재단 '일장기 경례' 중계 KBS기자에 해외연수 취소 통보

재단 "한일정상회담 방송 당사자 연수지원 부적절"
"규정없이 선발 취소… 전례되면 타 언론사·기자에도 영향"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자체 선발한 해외장기연수 예정자에게 규정도 없는 재심사를 내세워 선발 취소를 통보했다.

앞서 언론재단은 지난 4일 ‘2023년 언론인 해외장기연수자’로 선정한 5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합격자 가운데 범기영 KBS 기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1년간 연수할 예정이었다.

결과 발표 일주일만인 지난 11일, 언론재단은 범 기자에게 심사 당시 논의되지 않았던 사안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심사위원회 회의 재개최를 알렸다. 이와 함께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 환영 행사 방송과 관련해 소명을 요청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소개된 재단의 '언론역량강화' 역할.

KBS는 지난달 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환영 행사를 뉴스특보로 생중계했다. 이날 방송의 진행을 맡은 범 기자는 일본 의장대 사열 현장을 중계하며 “일장기를 향해 윤석열 대통령이 경례하는 모습을 방금 보셨다. 단상에 태극기가 설치돼 있는데 의장대가 우리 국기를 들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론 일본 의장대가 태극기와 일장기를 함께 들고 있었다. 당시 중계 화면엔 태극기가 보이지 않아 실수로 발언한 것이다.

KBS는 해당 방송 끝부분에 “남자 앵커가 윤 대통령이 일본 의장대에 인사하는 장면에서 ‘의장대가 태극기를 들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언급했으나 실제 일본 의장대는 일본 국기와 함께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며 “다만 화면상에 일장기만 보여 상황 설명에 착오가 있었다. 이를 바로잡고 혼선을 드린 데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다. KBS는 이날 저녁 9시 뉴스에서도 “진행자가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며 재차 사과했다.

언론재단은 범 기자가 당시 방송의 당사자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언론재단은 11일 오후 심사위 회의에 직접 출석한 범 기자의 소명을 들었고, 이튿날 오전 해외장기연수 선발 취소를 통보했다. 해당 방송과 관련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 신청이 있다는 점과 이 사안으로 범 기자가 사내 징계를 받았다는 이유였다. 범 기자는 KBS 내부 프로그램 심의 과정에서 ‘경고’ 처분을 받았다.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3월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의장대 사열을하며 양국 국기에 예를 갖추고 있다. /연합뉴스

언론재단 관계자는 “연수자 선정 결과 발표 이후 한일 정상회담 방송 내용을 알게 됐다”며 “당사자에게 연수 기회를 주는 게 맞는지 내부에서 검토하다 심사위 재개최를 결정했고, 최종적으로 연수 지원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선발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언론재단이 해외연수자 선발을 취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연수자 선발에 재심사 또는 취소 규정도 없다. 심사위원회는 재단 내부 인사 2명과 외부 인사 3명 등 총 5명인데, 이번 취소는 내부 심사위원과 재단 임원들의 결정만으로 이뤄졌다. 언론재단 관계자는 “재심 규정이 없어 심사위에서 재심 가능 여부를 논의했다”며 “외부 심사위원들은 재심할 사안이 아니고 재단 내부에서 판단하라는 의견을 주셔서 재단 임원들이 장고 끝에 취소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범 기자는 12일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생방송 중에 그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방심위에 정식 안건으로 회부될지 결정도 안 된 사안으로 연수 취소를 통보받아 너무 놀랐다”며 “향후에도 특정 보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때, 어떤 결론이 내려지기도 전에, 관련 근거 규정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단이 임의로 처분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언론재단은 언론과 언론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기관이다. 관련 규정이나 절차 없이 이뤄진 이번 결정은 어떤 사안에든 부정적인 선례가 될 수 있다. 지형철 KBS기자협회장은 “기자 개인이 의도나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한 발언이 아니라 실수였고, 그 발언에 대해 수차례 사과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책임을 묻는 게 합당한지 의문”이라며 “KBS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일이 전례가 되면 다른 언론사와 기자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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