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게… 현명하게… 공허한 원칙만
파병·반전시위 등 이라크전 보도 입장표명 않고 단순중계
미국의 대이라크전 반대 움직임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나 우리언론은 이를 단순 사건으로 보도할 뿐 ‘반전 현상’을 정면으로 다루거나 이라크전의 성격을 규명하고 입장을 표명하는데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라크전 파병을 시사한 김석수 총리의 국회발언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 없이 단순 중계하는 등 국내에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도 모호한 ‘신중론’으로 문제의 핵심을 피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석수 총리는 지난 10일 국회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비해 파병을 준비중”이라며 아프간 수준 또는 동티모르 수준의 파병 방침을 시사했다. 전 세계적으로 반전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터져 나온 김 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충분히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이라크 파병 사전준비” 김석수 총리 국회 답변’(대한매일, 조선), ‘이라크 파병 시사, 김총리 “아프간 준해 사전준비”’(경향) 등 김 총리의 발언을 대수롭지 않게 단순 중계하는 데 그쳤다. 문화일보가 11일자 사설에서 “미국이 이 시기에 이런 전쟁을 하는 것이 옳으냐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며 “파병을 그런 식으로 기정사실화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 데 이어 한겨레가 12일자 사설에서 “미국의 일방적이고 명분 없는 전쟁에 한국의 젊은이들이 참전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못박았을 뿐이다.
동아일보의 경우는 12일자 사설에서 김 총리의 발언을 “다소 앞서 나간 발언”이라고 지적하기는 했으나 “요즘처럼 양국관계가 어수선할 때 미-이라크전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한미동맹 체제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엉뚱한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미국이 우리 정부에 대이라크 전쟁지원을 공식 요청해 왔을 때도 언론은 ‘신중한 대처’만을 강조했을 뿐 이라크전의 문제점이나 우리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라크 전쟁지원 신중 대처해야’(세계) ‘이라크전 지원 최소화해야’(국민) ‘이라크전에 국익차원 대비를’(조선) ‘이라크전 지원, 현명한 대처를’(한국) 등 ‘신중’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공허한 원칙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언론은 “대미 관계를 포함한 국제정치적 현실”(국민)과 “미국은 우리 안보에 막중한 역할을 하는 동맹국”(조선)이라는 이유를 들어“정부는 어떤 방식이든 미국을 지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일 것”(세계) “정부가 이를 냉정하게 거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조선)며 ‘지원 불가피론’에 무게를 싣기도 했다.
지난 15일 세계 100여개국 400여개 도시에서 열린,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전평화시위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도 단순 중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날 국내에서도 참여연대 등 700여개 시민 사회단체가 대학로에 모여 대규모 반전시위를 벌였지만 언론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전 움직임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는 스케치 기사 정도로 취급했다. 사회면이나 1면 하단, 국제면 등에 ‘“이라크전 반대” 주말 대도시 반전시위’ 등의 제목으로 주요하게 다뤄지기는 했으나 사설이나 해설기사 등을 통해 이같은 현상의 배경을 분석하거나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 또는 힘의 외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겨레만이 17일자 사설에서 “만약 미국이 전쟁 외의 방법을 찾는다면, 2003년 2월 15일은 세계시민이 맨손으로 전쟁을 막은 위대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다. 특히 지난 7일과 16일 1, 2차에 걸쳐 ‘인간방패’를 자원한 ‘한국 이라크 반전평화팀’ 소속 인사들이 이라크로 출국한 사실은 경향, 국민, 문화, 한겨레 등 일부 언론에서 단신 처리하거나 단순 스트레이트로 보도했을 뿐 상당수 언론에 아예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박미영 기자
[email protected]
박미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