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보도, 언론이 '카더라 통신'이 되는 순간

[언론 다시보기] 강혜민 비마이너 편집장

강혜민 비마이너 편집장

지난 3월7일 데일리안은 제목에 ‘단독’을 달고 서울시 관계자를 인터뷰한 기사를 내보냈다. ([단독] 서울시 “행정갑질? 표적수사? 시비 지원사업 관리감독 당연…다음주 공공일자리 실사”) 탈시설 관련 정책 사업에 대한 서울시의 갑작스러운 감사에 전장연이 ‘표적수사’라며 반발하자,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를 익명으로 인터뷰한 것이다. (관련 기사 : 서울시, 전장연 압박하며 ‘탈시설 조이기’ 본격화)


탈시설은 중증장애인이 수용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평등하게 살아가는 정책을 말한다. 비장애인은 태어날 때부터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삶이 자연스럽지만 장애인에겐 그렇지 않다. 그러니 탈시설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한다. 자연히 돈이 많이 든다. 최근 조중동과 경제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탈시설을 공격하는 기사가 많아졌다.

이 기사는 바로 그러한 갈등의 흐름 위에 있다. 이 기사의 비극은 두 가지다. 기자가 자신이 쓰는 기사 내용을 모르고 썼다는 것과 또 하나는 익명 보도의 문제다.

기사를 쓴 기자는 탈시설이 무엇이고,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쓴 것 같진 않다. 그저 서울시 관계자의 말과 자료를 받아쓸 뿐이다. 기사에 따르면 기자는 7일 서울시 관계자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기자는 이날 총 6개의 기사를 썼는데 이 기사는 다섯 번째 기사다. 이 기자는 2월22일에도 탈시설 관련 ‘단독’ 기사를 썼다. 여기에도 익명의 ‘서울시 관계자’가 등장한다.

언론의 정확성과 신뢰는 투명한 취재원 공개를 기반으로 한다. 특정 정책을 공격하는 의도를 지닌 기사에서 주요 정보를 제공하는 취재원을 익명으로 등장시키는 것은 언론윤리에 반한다(한국기자협회 신문윤리실천요강 5조 3항).

실명보도를 원칙으로 하는 언론윤리가 무너지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 2003년 뉴욕타임스의 제이슨 블레어는 타사의 기사를 표절하고 자신이 가지도 않은 현장에 가서 취재한 것처럼 기사를 조작했다. 유사한 일은 최근 한국에서도 있었다. 2018년 부산지역 민영방송 KNN 기자는 자기 목소리를 변조해 여러 명의 취재원을 인터뷰한 것처럼 조작해 보도했다.

블레어 사건 즉시 뉴욕타임스는 5개월간 대대적인 조사를 통해 이 사건을 바로 잡을 기회들을 찾고 재발 방지를 위한 조직 개편에 착수하면서 익명 보도에 관한 원칙을 세운다. 이에 따르면, 신원을 밝히지 않은 취재원이 추측하는 발언은 허용하지 않으며, 편집장에겐 익명의 취재원의 신분을 공유한다. 불가피한 경우 익명의 취재원을 등장시킬 때면 그가 어떻게 해당 사안을 잘 알만한 위치에 있는지, 우리가 왜 그를 신뢰해도 되는지, 취재원이 어떤 방법으로 특정 정보에 접근했는지, 그가 왜 이 정보를 공개하려는지 가능하면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 당시 시걸위원회가 펴낸 이 조사보고서의 제목은 ‘왜 우리의 저널리즘은 실패했나’이다.

익명 보도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입장은 최근 발간한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에서 더욱 철저해졌다. 익명 보도는 “다른 방안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 최후의 수단”으로만 택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자는 자신이 쓰는 기사가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윤리를 저 스스로 저버리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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