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가 김창열 전 위원장의 사퇴 이후 보름이 넘도록 표류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의 사임을 전후해 물러난 위원 2명을 합치면 위원 9명 가운데 6명만이 남아 가까스로 정족수를 채우고 있다.
이러한 파행적인 사태는 하루빨리 시정돼야 한다. 무엇보다 방송위원회 고유업무의 중요성 때문이다. 방송위원회가 무엇을 하는 조직인가? 공영방송사의 이사를 추천하고 방송프로그램의 심의를 하는 곳이다. 이는 방송의 공정성과 건강성을 담보하는 기본이다. 짧은 기간이라도 이같은 기능을 멈출 수는 없다. 더구나 지금은 옷 로비의혹,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에 대한 국회 청문회와 특별검사제 도입 문제로 방송의 정치적 균형이 더욱 절실한 시기다.
통합방송법 국회 처리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정부여당은 당초 내걸었던 방송개혁 의지에 대해 증폭되고 있는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방송위원회 정상 가동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방송계에서는 정부여당이 통합방송법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현행 방송위원회 체제로, 특히 위원장이 친정부적인 인사로 선임된 상태로 내년 총선을 치르기 위해 술수를 부리고 있다는 의혹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방송계 안팎을 들끓게 했던 한정일 씨 방송위원장 내정설은 이같은 우려를 현실화할 뻔한 사건이었다. 비록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내정설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언론인과 시민들은 아직도 의혹의 눈으로 정권을 감시하고 있음을 정부여당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한씨가 그간의 경력이나 행적이 친DJ적이라는 이유로 여론의 거센 반발을 샀다는 것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여론과 방송 내부의 감시기능이 살아난 지금 방송위원장이 될 인사는 최소한 중립적이고 덕망을 갖춘, 흠결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차기 방송위원장이 여권의 총선 승리를 위해 첨병노릇을 할 인사로 선임된다면 우리 역사에는 다시 한번 불행의 씨앗이 움틀 것이다. 우리 현대사를 멍들게 한 장본인 중 하나가 방송이었다면 그 이면에는 방송을 정권의 홍보도구로 활용하려는 이들의 끝없는 권력욕이 늘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됐는가? 혹은 감옥에서, 혹은 청문회에서 세인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신세가 되지 않았는가! 국민의 알권리를 가로막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결과가 아닌가.
자신의 분신을 보며 자아도취에 빠진 나르시스가 죽음의파국으로치달았듯, 방송을 자신의 분신으로 만든 과거 정권 역시 끝끝내 파멸하고야 말았음을 정부여당은 직시해야 한다. 방송을 이용한다면 지금은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는 그만큼 후퇴하게 된다는 사실을 여권은 잊어선 안된다.
결론은 간단하다. 대통령 몫의 방송위원 1명을 하루 빨리 추천해 방송위원회의 기능을 제자리로 돌려라. 그리고 방송위원회를 정권의 수족으로 만들려 하지 말라. 개혁와 퇴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현 정권이 개혁을 향한 방향과 균형을 잃지 않는 길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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