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9억에 무너진 언론윤리

[핫 이슈] 대장동 김만배와 주요 언론사 간부들 돈거래 의혹 일파만파

접대, 골프채, 자동차 무상 대여는 일탈 행위의 징조에 불과했나. 일부 신문사 간부들이 대장동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화천대유 대주주)와 수억원대 돈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9억원. 한겨레 편집국 간부가 2019년 5월 3억원을 비롯해 이듬해까지 4차례 더 김씨에게 받은 액수다. 이 간부는 지난 5~6일 언론 보도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6억원을 빌렸지만 현재 2억여원을 변제한 상태이며 나머지도 갚겠다는 의사를 김씨에게 전달했다”고 소명했다. 하지만 이 소명마저 3억원이 추가로 나오면서 거짓으로 드러났다. 한겨레는 9일 이 간부를 해고했다. 이 간부는 지난해 3월, 화천대유 관계사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가 검찰 조사에서 “김만배씨가 중앙일간지 기자에게 집을 사줘야 한다며 돈을 가져오라고 해서 6억원을 줬다”는 취지의 동아일보 보도를 보고 저간의 사정을 동료 부장에게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동료 부장은 이 간부의 해명이 타당해 보인다며 못들은 걸로 하면서 내부 공론화 기회를 놓쳤다.

언론사 편집국 간부들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금전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해당 언론사들은 김씨와 돈거래를 한 기자들에 대해 해고, 업무배제 등 조치를 내리고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와 함께 김씨가 골프 접대 등을 통해 수십 명에게 한 사람당 100만원에서 수백만원을 건넨 사실을 검찰에서 파악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연합뉴스


이번 사태로 ‘신뢰 언론’을 자부한 한겨레의 저널리즘 가치는 침몰하고 있다. 편집국장이 사퇴하고 사장 등 경영진이 퇴진 의사를 밝혔지만, 한겨레의 버팀목이던 도덕성이 의심을 받으면서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한겨레는 1991년 11월 ‘보사부 기자단 거액 촌지’ 특종 보도로 당시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기자들의 촌지 수수 실상을 처음으로 밝히며 언론계 자정을 이끌었다. 한겨레 노조 성명대로 “우리는 가난했지만, 그 가난은 기꺼웠고, 부끄럽지 않았습니다”며 남다른 윤리의식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한겨레도 점점 주류 언론의 자장으로 편입되면서 무뎌진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일보 간부는 2020년 1월 이사 자금 등 명목으로 1억원을 김씨에게 빌렸다고 한다. 중앙일보 간부는 2018년 김씨에게 8000만원을 빌려줬고, 7~8개월 뒤인 이듬해 4월 원금과 이자를 합쳐 9000만원을 돌려받았다. 한국일보와 중앙일보는 이들을 업무배제 등 조치를 내리고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한국일보는 금전거래에 대한 사실 확인, 대장동 사건 관련 보도에 해당 간부의 영향력 행사 등을 중심으로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 중앙일보도 편집인, 편집국장, 법무홍보실장 등으로 진상조사위를 꾸렸다.


김씨와 금전거래한 간부들은 사인 간의 거래 또는 대여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액수, 전달 시점 등을 감안하면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다는 게 중론이다. 김씨는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으로 있던 2015년 2월 대장동 개발사업 시행사인 화천대유를 설립해 그해 곽상도 의원의 아들, 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딸을 화천대유에 입사시켰다.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한 사이인 만큼 2019~2020년 금전거래 당시 대장동과 관련된 김씨 행적을 모르고 돈을 빌렸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들은 2021년 9월 대장동 사태가 터진 뒤에도 김씨와 돈거래 사실을 회사에 알리지 않았다. 그사이 승진도 하고 주요 보직을 맡아 뉴스룸을 이끌었다.


김씨의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전방위적 로비는 돈거래로 끝나지 않는 것 같다. 골프 접대 등을 통해 수십 명에게 한 사람당 100만원에서 수백만원을 건넨 사실을 검찰에서 파악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또 전 중앙일간지 논설위원, 전 경제지 선임기자, 전 뉴스통신사 부국장 등을 화천대유 고문으로 영입해 고문료로 수천만원을 지급하고, 민영통신사와 전문지를 인수하려던 사실도 드러났다.


기자들이 연루된 이번 사태는 언론 윤리를 되묻게 한다. 기자들의 비윤리적 일탈 행위가 일어날 때마다 반성하고 저널리즘 책무를 강조하고 언론윤리헌장을 제정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출입처에서 만나 한두 번 식사하고 형님 동생 사이로 지내다 술자리 갖고 골프를 치다 보면 기자로서의 정체성은 무뎌지고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분위기에 시나브로 젖어 들면 본분을 망각하고 더 한 것도 받으면서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자기 최면에 갇힌다. 이런 무뎌진 윤리의식은 취재 현장에서 분투하는 기자들에게 허탈감을 안긴다.


‘무겁게 반성합니다.’ 김만배와 언론사 간부의 돈거래와 관련해 한국기자협회가 10일 낸 성명 제목이다. 기자협회는 “이번 사태에 깊이 반성하며 언론 윤리에 대해 성찰하고 자성하는 자정의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어디서부터 무너졌는지 철저히 점검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 안에 또 이런 성명을 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더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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