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의 보도국 내부 시스템 점검 요구... CBS노조 "보도지침"

노조, 사측 공방협 보고서 조목조목 반박

사장의 보도 개입 사태를 일으켰던 일명 ‘빈집’ 기사를 두고 CBS 사측이 여전히 기사와 데스킹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노조와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CBS 사측은 지난 14일 ‘사측이 쓴 공정방송협의회 보고서’를 사내 게시판에 올리며, 보도와 데스킹을 지적하는 것은 물론 당시 보도국 내부 시스템에 대한 점검을 요구했다. 사장의 의견개진이 현장 취재 실무자에게 직접적으로 이뤄진 데 대해선 사과하면서도 보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다시 한 번 분명히 했다. 전국언론노조 CBS지부는 이에 15일 성명을 내고 “이 보고서는 사장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은 변론서나 다름없다”며 “CBS지부는 CBS 사측 보고서의 정정보고를 청구한다”고 반박했다.

앞서 CBS 노사는 지난 7일 공정방송협의회(공방협)를 열고 김진오 CBS 사장의 ‘빈집’ 기사 수정 및 삭제 지시에 관해 논의했다. 언론노조 CBS지부에 따르면 당시 노측은 “사장의 사과 입장 및 재발방지 약속의 재확인”을 사측에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또 “편성, 보도는 내외부의 어떠한 간섭이나 압력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하자”고 했지만 사측은 기사와 데스킹에 문제가 있다며, 이에 관한 내용을 함께 회의 결과에 담을 것을 고수했다. 결국 합의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면서 CBS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노동조합이 쓴 공정방송협의회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12일자 노보에 게시했다.

14일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사측이 쓴 공정방송협의회 보고서’는 바로 이 노조 측 보고서에 대한 사측의 반박이다. 사측은 이 보고서에서 “보도준칙에 입각해 보도는 사실에 기초해야 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요구했으나 노측은 ‘빈집 관련 기사에 문제가 없었다’며 이를 거부했다”면서 “또 사측은 기사 작성 및 수정과정에서 보도국 국장 및 부장(데스크)의 적극적인 확인, 조정, 보완 등 데스킹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어 “빈집 기사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결과 반론보도로 마무리 됐다”며 “사장의 의견 개진 내용과 거의 동일한 것이다. 사측 공방협 위원은 기사 출고부터 기사 수정에 이르기까지 12시간 동안 보도국 내부 시스템에 대한 점검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사측은 다만 기사에 대한 사장의 의견개진이 “보도국장이 아닌 관련 부장 및 시경캡 등 현장 취재 실무자에게 직접적으로” 이뤄진 데 대해선 유감을 표시했다. 사측은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편성 및 편집권은 내외부의 어떠한 간섭이나 압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하며, 보도상의 실무 책임과 권한은 관련 국장에게 있고, 경영진은 그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는 단체협약 조항을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국장에게는 의견 개진 할 수 있다는 건가"…사장의 '보도지침'

반면 CBS지부는 15일 성명에서 이 같은 사측의 보고서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CBS지부는 “사장의 기사 삭제 지시가 국장이 아닌 현장 취재 실무자에게 직접 이뤄진 것에 사측은 유감을 표시했다”며 “사장이 국장에게는 ‘의견 개진’을 할 수 있다고 돌려 말하고 싶은가보다. 사장의 빈집 기사 삭제 지시는 명백한 보도 개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태원 참사 당시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빈집’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다.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이 빈집이고, 거주를 안 하니 전혀 무리가 없는 표현”이라며 “행여 사람이 살아도 밖에 나가 비어 있으면 빈집으로 부른다. ‘위협 대비 시스템 구축과 장비 설치’를 이유로 빈집이 아니라는 대통령경호처의 주장을 듣고 맞장구를 치는 CBS 사측은 국어사전부터 펼쳐보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또 반론보도와 관련해서도 “보도 내용의 진실 여부에 관계없이 그와 대립되는 반박적 주장을 보도하는 것을 반론보도라 말한다”며 “그런데 사측은 대통령경호처의 반론 내용이 사장의 의견개진 내용과 거의 동일한 것이라며 기사 출고부터 기사 수정에 이르기까지 점검을 요구했다. 즉, 앞으로 대통령실 입장만 받아쓰라는 소리로, 이것이 그 옛것 ‘보도지침’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공방협 회의 결과는 CBS의 반성문이며 참회록이자 다시는 신뢰를 잃지 않겠다는 대국민 약속의 보고서였어야 했다”며 “그런데 사측의 보고서는 사장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은 변론서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15일 서울 양천구 CBS 사옥 내에 게시된 전국언론노조 CBS지부 성명.

앞서 김진오 CBS 사장은 지난달 5일 CBS의 단독 보도 <참사 당일 ‘빈집’인 尹 관저 지킨 경찰...지원 불가했다> 기사와 관련, 보도국 데스크들을 소집해 ‘빈집’이란 단어를 빼라고 지시했다. ‘빈집’이란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틀린 사실이 없고 객관성을 잃지도 않았다며 기자와 데스크가 항변했지만 이후 사장의 뜻은 관철됐고, 결국 기사는 수정됐다.

CBS 기자들은 이후 사장의 보도 개입에 항의하며 성명을 잇달아 게재했고, 기수별 대표 간담회를 열어 사장에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지난달 28일엔 CBS 기자협회장이 사장과 면담을 가졌고, 이날 오후 김진오 사장은 “최근 논란이 된 저의 발언에 대해 보도국 기자들에게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의 뜻을 담은 글을 사내에 게시했다. 공방협은 이 사안을 서면으로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노조 공정방송위원회의 뜻에 따라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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