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뉴스 발생시점이 보도시점 돼야

일부 조간기자·정부 편의 위한 왜곡된 엠바고 관행 개선 시급

최명식 기자

문화일보 사회1부



기자들 간의 과열 경쟁을 막고 취재 편의를 위해 도입된 엠바고 관행이 최근 상식을 뛰어 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일부 조간기자들과 정부 등 뉴스공급자들의 이해관계가 일치되면서 의도적으로 뉴스 공급 시간대가 조절되는 상황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뉴스는 당연히 발생시점이 곧 보도시점이 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최근 정부의 ‘김대중 대통령 8·15 경축사 후속대책’에서 비상식적인 엠바고 규정이 정점을 이루었다. 정부는 후속대책 12건 모두를 조간신문 보도시간으로 배정하는 ‘우’를 범했다. 오전 발표내용을 다음날에 보도하도록 했다. 후속대책 중 새로운 정책도 있었지만 예전부터 다 나온 정책도 상당수 있었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효과적인 홍보를 위해서라는 부연 설명에 일부 기자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대다수 의견에 묻혀 정부측 입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기초생활대책’의 경우 18일 오전 7시30분부터 당정협의가 예정돼 있어 장관이 기자들의 기사작성 편의를 위해 17일 오후 2시 기자실에서 19일자 조간 엠바고를 전제로 대책발표를 했다. 조간신문들은 당정협의 몇 시간 뒤인 18일 오후에 발행되는 가판부터 넣을 수 있겠지만 석간은 19일 오후에나 받아볼 수 있게 된다. 장관 발표 시점과는 48시간, 당정협의 결과보다는 36시간 이후에야 석간 독자들이 받아볼 수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수용키 어려운 엠바고였다. 이 과정에서 석간은 빠른 독점보도를 요구한 것도 아니다. 당일 석간 보도 원칙을 세웠고 이 과정에서 일부 조간들은 18일자 가판부터, 대다수 조간들은 같은 날 본판에 실었다.



지금은 1분 1초를 다투는 정보화시대다. 발생시점과 보도시점 사이에 시간적 차이가 생긴다면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특히 민감한 경제정보의 경우 정보를 선점한 소수에게 이익을 취할 시간을 줄 수 있다. 최근 세종증권 사장 구속의 경우가 그렇다. 엠바고로 정해 미리 알려져 있었는데 질질 끌다가 10여 일 뒤에야 공식 발표됐다. 늦어진 기간 동안 세종증권 주가가 떨어졌다. 이 사실을 안 소수는 주식을 팔았지만 일반인들은 큰 손해를 보았다. 국내 최초의 신약개발 발표건도 마찬가지다. 이미 신약을 개발한 SK케미칼 주가는 오를 대로 올라 정작 신문에 발표된 후 주가가 큰 폭으로떨어졌고급기야 금감위의 ‘내부자거래’ 조사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사건이든 국민에게 바로바로 알려주는 것이 정보의 평등을 위해서 필요하다.



자신이 속한 매체의 입장을 떠나서 기자로서 한번쯤 고민해 볼 문제다. 타사 기자들은 “문화일보가 자기 몫 찾으려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문제 제기한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가 석간이라서 엠바고 문제점을 절실히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일보가 이번에 왜곡된 엠바고를 지키지 못한다고 선언한 이유는 분명하다. ‘발생시점이 곧 보도시점’이 돼야 한다는 원칙이다.



오랫동안 관행화된 엠바고 제도 자체를 일순간에 없애자는 것은 사실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식을 벗어나고 행정관청의 편의에 의해 임의로 보도시간을 통제하는 것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미국·일본에는 기자실이 없다. 기자실 제도는 후진 언론의 고질적 병폐다. 국내 언론사들의 열악한 업무여건을 감안할 때 기자실제도마저 부정하기는 당장 어렵다고 본다. 국익이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엠바고는 인정하겠지만 터무니 없는 엠바고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이와 함께 이번 기회에 비상식적으로 정한 엠바고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료기자에게 취재정보 근접을 막는 제재를 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한 언급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명식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