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뒤, 모든 방송은 특보를 내보냈습니다. 신문들도 많은 지면을 참사 보도에 할애했습니다. 방송, 신문 할 것 없이 참사 현장 상황이 그대로 담겼습니다. 생생한 현장을 전달한다고 일방적인 주장이 그대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현장에 갔던 사람들이 SNS에 올린 당시 현장 영상을 보지 않을 수는 있지만 방송과 신문에 담겨서 확산되는 영상을 보지 않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결국 저도 한동안 뉴스 소비를 줄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세월호 때 기억이 났습니다. 그때도 며칠 동안 계속 현장을 비추고 침몰 당시의 영상을 내보냈는데, 전 국민이 우울증에 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언론도 할 말이 있습니다. 이런 참사 때 관련 보도량을 줄이거나 다른 프로그램을 내보내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도 분위기를 해치지도 않아야 하고, 그렇다고 보도량을 너무 늘리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장을 많이 보여주면 트라우마가 생긴다는 비판이 나오고 현장을 안 보여주면 뭘 숨기려고 그러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럴 때 참고하라고 만들어놓은 것이 각종 준칙입니다. 재난보도준칙에는 이번 같은 참사를 보도할 때 적용할 내용이 많습니다. 이번에 참사가 난 것은 토요일 밤에서 일요일 새벽이었고, 10월의 마지막 주말에 갑자기 특보를 하느라 언론인들도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월요일이 되자 방송사들이 점차 안정을 되찾았고, 현장 영상 사용을 꼭 필요한 경우로 제한하는 등의 결정이 이뤄졌습니다. 나름 신속한 대응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짚어볼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결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입니다.
언론윤리 관련한 얘기를 할 때 흔히 ‘종합적’인 판단, ‘사고 훈련’같은 것을 강조합니다. 그렇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판단을 내려야 하는 언론의 현실 상황을 생각하면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종합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현장에서는 신속한 판단이 필요한데 ‘종합적 판단’을 하겠다고 관련자들이 모여 끝장 토론을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당장 현장 취재는 어느 정도가 적정할지, 화면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관련된 인물의 인터뷰나 현장 연결은 어떻게 하는 게 맞을지 등등 판단해야 할 사안이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번과 같은 참사에서만 이런 윤리적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윤리적 질문이 제기될 때 어떻게 답을 내느냐는 겁니다. 저는 일상적으로 내려야 하는 이런 윤리적 결정을 ‘종합적 판단’을 한다는 핑계로 미루지 않게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문제는 아무의 문제도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종합적 판단’이라는 말은 조직 전체로 책임을 미루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윤리적 쟁점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지침을 주기를 기다리다 보면 실제 업무는 그동안의 관행에 따라 수행하기 쉽습니다. 다른 언론사 눈치를 보기도 하죠.
현실 세계에서 모든 문제의 정답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최대한 좋은 답을 찾으려 노력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조금이라도 더 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시한 안에 내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뉴스룸은 나름의 언론윤리적 판단 방식을 제도화하고 기준을 도식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필요한 때에 판단을 내려야 하니까요.
이를 위해서 먼저 뉴스룸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뉴스룸 안에, 이런 문제를 전문적으로 검토해서 답을 줄 수 있는 단위를 만들어야 합니다. 회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편집회의와 같이 많은 인원이 모여야 하는 기구로는 수시로 제기되는 질문에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언론윤리에 관한 전문성과 함께 소통 능력이 있는 소수의 인원으로 질문이 제기되면 바로 검토해 답을 줄 수 있는 기구나 담당을 두기를 권합니다. 내부 인원만으로 적정한 전문성 확보가 어렵다면 외부 전문가와 협업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논의한 내용은 모두 기록으로 남겨서 축적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직 안에 윤리적 판단에 대한 신뢰가 축적되고, 일상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출발점은 각자 맡은 일의 중요성과 책임을 인식하는 겁니다. 그런 인식이 있어야 나름의 판단 기준이라는 것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판단 기준을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사실성과 공익성입니다. 독립성은 공익성의 일부로 봅니다. 복잡한 윤리 기준을 가장 단순화한 겁니다.
최근 경향은 여기에 ‘피해의 최소화’를 추가합니다. 보도의 대상이든 소비자이든, 보도로 새로운 피해가 생기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 같은 참사 보도에서는 특히 중요합니다. ‘사실 보도’는 정말 중요하지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유족은 물론 일반 시청자, 독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 영상 사용을 자제하기로 한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도식화를 한다는 것은 보도할 때마다 이들 기준에 부합하는지 모든 사람이 자체 판단을 내리고 조금이라도 의문이 생기면 뉴스룸 차원의 조직에 문의하게 시스템화하는 겁니다. 뉴스룸 차원에서 문제를 발견할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먼저 자기 책임이라고 느껴야 이런 윤리적 문제에서의 진전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방송사들은 이번 참사 직후 사실상 거의 모든 현장 영상을 흐리게 처리하고 참혹한 화면이 방송되지 않도록 내부적으로 관리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흐리게 처리는 됐다 하더라도 현장 영상이 반복적으로 방송되거나 일방적인 목격자 인터뷰가 방송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채널을 돌려도 온통 그런 영상들이라 방송을 보지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현장 사진을 인터넷에 그대로 올린 신문도 많았습니다.
언론사들은 지적이 제기되자 이번에는 비교적 신속하게 이런 문제를 바로잡았습니다. 윤리적 인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판단 시스템의 문제였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특정 지역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길 수 있다며 ‘이태원 참사’대신 襪䞙참사’라고 부르겠다는 언론사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그만큼 이런 문제에 예민하게 대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고 고민하고 있더라도 이런 문제를 다루는 시스템이 확실하게 마련돼 있지 않으면 다음에도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관행을 따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기회에 언론이 윤리적 판단 기준과 논의 시스템을 도식화, 제도화하는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했으면 합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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