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사회부 저연차들 주로 현장에… "그날 이후 두려움 느껴"

기자 트라우마, 반짝 관심 아닌 장기적 예방·관리 대책 필요

158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주일이 지났다. 정부가 지정한 일주일간의 애도 기간은 지난 5일 끝났지만 생존자들과 유가족, 구조인력,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마주한 시민들의 슬픔은 언제 잦아들지 가늠하기 어렵다. 참사 현장과 빈소 등을 취재하고 관련 사안을 다루는 기자들 역시 정신적 충격을 안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업무상 트라우마에 대한 기자사회의 인식은 한층 선명해졌으나, 현장에선 충분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일회성 대처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자들의 트라우마를 예방하고 관리할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유실물센터에 진공 포장되어 운송을 기다리는 유실물들이 놓여있다. 이날 오후 센터 운영이 종료되면서 남은 유실물 700여점은 용산경찰서로 옮겨졌다. 정부가 지정한 일주일간의 애도 기간은 지난 5일 끝났지만 생존자들과 유가족, 구조인력,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마주한 시민들, 참사 현장과 빈소 등을 취재한 기자들의 슬픔과 충격은 언제 잦아들지 가늠하기 어렵다. /뉴시스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된 기자들은 주로 사회부에 속한 주니어였다. 이들에겐 기자가 되고 처음 맞닥뜨린 대규모 재난 현장이었다. 방송사 저연차 A 기자는 그저 “조심하라”는 선배의 말을 듣고선 10월29일 참사 당일 늦은 밤 현장에 도착했다. 처음 본 광경은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이었다. 현장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람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 오십 명. 더 이상 셀 수 없었다. 부상자인 줄 알았던 이들이 실제로는 사망한 상태였다는 걸 뒤늦게 인지했기 때문이다.


A 기자는 “50명을 셀 때까지도 바닥에 누워있는 분들이 돌아가셨을 거란 생각조차 못 했다. 세는 걸 포기하고 현장 옆쪽 건물을 보니 거기에 더 많은 사망자가 있어서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탄식이 나올 정도였다”며 “밤새 현장에 있는 내내 두려웠고 불안했다. 취재하려면 더 가까이 가서 자세히 봐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나서 머뭇거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A 기자는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를 하고 있다. 일은 하고 있지만 그날 이후 자주 멍하고 갑자기 두려움에 휩싸이곤 한다. A 기자는 “그날 장면을 잊고 싶고 이 사안 자체와 멀어지고 싶은 욕심이 계속 들었다”며 “그런데 그다음 날, 또 다음날도 계속 취재하다 보니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송사의 저연차 B 기자도 이태원역에서 현장 중계를 하다 울컥한 마음을 스스로 달래야 했다. B 기자는 “첫날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체감하지 못하다가 참사 발생 며칠 뒤 현장을 등지고 카메라 앞에 섰는데 갑자기 두렵고 울컥해서 이를 악물고 중계를 마쳤다”며 “같이 취재한 동기들도 문득문득 현장 상황이 떠오른다거나 저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어느 재난 현장이든 생존자·유가족 취재는 특히 쉽지 않은 일이다. 기자들이 다가가는 것만으로 피해 당사자와 유가족들은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고, 기자들도 그 과정에서 심적 고통을 느낀다. 문제는 취재 방식이다. 종합일간지 저연차 C 기자는 “저와 같은 평기자뿐 아니라 팀장이나 데스크도 그분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지 않으려면 어떤 방식으로 취재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며 “현장에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오히려 상처를 긁는 게 아닌지 걱정하다 다들 우왕좌왕한다. 막막한 상태에서 질책받으면 당황스럽고 저희도 상처받고 자괴감도 든다”고 말했다.


다른 종합일간지 소속인 D 기자도 유가족을 취재하다가 기자라는 직업에 회의감이 들었다. 특히 장례식장 취재가 그를 더욱 압박했다. 유가족에게 말을 걸었다가 거절당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의문이 커졌다. D 기자는 “유가족들이 누구보다 힘들 걸 알면서도 혹시 하고 싶은 말이 있을지 물어보는 게 기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다가갔다가 거절당해도 지면에 유가족 사연 기사가 잡혀 있으니까, 뭐라도 들으려고 기웃거리는 제 모습이 싫었다. 시민들을 위해 일하려고 기자가 됐고 당연히 유가족도 시민의 범주에 있는데 그분들이 원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힘들었다”고 말했다.


괴로운 마음을 떨치기 어려웠던 D 기자는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특히 세월호 참사 취재 경험이 있는 선배들이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도 방치하면 트라우마로 남는다’면서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의사와 상담하며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회사가 진료 비용을 지원한 덕분에 부담도 덜었다.


많은 기자가 트라우마를 경험한 8년 전 세월호 참사와 달리 이번 이태원 참사 때는 여러 언론사가 진료비, 상담비를 지원한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기자들도 상당수다. 가장 먼저 병원에 갈 정도의 상태인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고, 업무가 가중된 상황에서 병원이나 상담센터를 방문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고, 만약 고통을 호소한 자신이 업무에서 배제되면 다른 동료가 남은 일을 떠맡아야 한다는 미안함, 인사상 불이익 우려 등의 이유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취재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경험했던 한 방송사 기자는 현실적인 문턱을 낮추려면 회사가 신청자에게만 비용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참사를 다룬 모든 인력이 의무적으로 병원 또는 상담센터를 찾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기자는 “주변을 보면 자신의 트라우마를 인지하지 못하는 데다 심리상담이나 정신의학과 치료에 거부감이 있어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재난을 취재하고 보도한 인력 모두가 당연하게 상담부터 받는다면 트라우마를 예방할 수 있고 내부의 부정적인 인식도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현의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금이 트라우마를 막을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했다. 보통 충격을 받고 4~6주가 지난 후에도 우울감, 의욕 저하, 성격 변화, 분노 등이 지속된다면 트라우마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하다. 지금은 트라우마 이전의 ‘정신적 충격’ 시기다.


안 교수는 “현재 전문가들이 하는 것은 심리치료가 아니라 심리적 응급처치다. 단 5분이라도 상담 핫라인을 통해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도움이 된다”며 “기자는 트라우마 고위험직군이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 평소 언론사와 기자들이 트라우마 반응을 잘 이해하고 시뮬레이션하면 상황이 닥쳤을 때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안 교수는 한국기자협회·한국여성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와 한국 기자를 위한 트라우마 가이드라인 제정을 준비 중이다. 그에 앞서 기자들의 심리적 트라우마 현황을 분석하고 지원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다. 기자협회 회원을 대상으로 오는 18일까지 참여 신청을 받고 있다. 안 교수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에서 기자 개인의 트라우마 실태와 대처, 조직과 회사 차원의 대응 등을 깊게 다룰 것”이라며 “이미 나온 수많은 가이드라인이 왜 언론사 안에서 작동하지 않았는지 분석하고, 트라우마를 막을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새 가이드라인에 담으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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