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재난의 당사자가 아니어도 간접경험을 통해 트라우마 반응을 겪는 현상을 ‘2차 트라우마’라고 한다. 지난달 29일 대규모 인명피해가 난 이태원 참사로 생존자들과 유가족의 직접적인 트라우마뿐 아니라 당시 현장을 취재한 언론인들, 관련 보도를 접한 일반 국민까지 2차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상황이다. 재난 발생 이후 보도로 인한 트라우마를 어떻게 방지하고 회복할 수 있을까. 한국언론진흥재단과 국립정신건강센터가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언론재단과 정신건강센터는 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 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언론의 재난 취재·보도 과정에서 재난 당사자와 일반 국민, 언론인 등 재난에 노출된 모든 관련자의 트라우마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 효과적인 지침을 담았다. 앞서 두 기관은 지난 4월 업무협약을 맺고 가이드라인 제정을 준비해왔다. 언론현업단체와 언론학계, 트라우마학계가 추천한 인사를 포함해 전문가 10여명이 참여했다.
가이드라인은 재난 보도를 3단계(준비-취재-보도)로 구분하고 단계별 세부 지침을 제시했다. 먼저 준비단계에선 △언론사는 연 1회 이상 트라우마 예방 교육 시행 △기자는 재난 현장에 대한 정보 적극적으로 수집, 언론사는 기자가 취재에 적합한 건강 상태인지 점검 등이 있었다.
다음으로 취재단계에선 △재난 당사자의 심리 상태 확인 후 취재 △재난 당사자의 자발적 의사를 바탕으로 취재 △재난 당사자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 유지 △언론사는 기자의 신체적·심리적 안전에 주의하고 트라우마 예방과 대응을 위한 조치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지막 보도단계로는 △재난 당사자·가족의 사생활 인격 존중 △재난 당사자에게 낙인·부정적 인상 남길 수 있는 보도 지양 △심리적 고통을 가중할 수 있는 표현·자료 보도 금지 △피해 복구·회복 활동에 대한 보도는 사회통합과 공동체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 인지 △재난심리지원 등 사회지원서비스 안내 등을 제안했다.
가이드라인에 함께 실린 ‘언론인의 트라우마 관리’ 파트는 언론사와 언론인 개인 차원의 트라우마 예방책과 대처방안을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언론재단과 정신건강센터는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실제 쓰일 수 있도록 책자로 제작해 배포하고, 언론인 교육 프로그램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이날 가이드라인 발표에 앞서 ‘트라우마와 공감 언론’을 주제로 발표한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위원장(정신의학과 전문의)은 “트라우마를 예방하기 위해선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뉴스룸과 언론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언론인은 직무상 트라우마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마음의 고통을 드러내길 꺼리고 언론사 안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트라우마와 그 영향에 대해 이해하고 트라우마를 당한 동료에게 관심을 두면서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 위원장은 “건강한 기자가 건강한 뉴스를 만들고 뉴스가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다”면서 뉴스룸의 트라우마 이해가 언론인, 정보제공자, 인터뷰이, 시민 등 모두에게 이롭다고 했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도 “모두에게 해가 되지 않는 재난 보도는 당사자와 가족, 일반 국민, 언론인의 안전이 확보될 때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심 센터장은 “공감은 재난 보도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다만 언론인에겐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며 “언론인이 자기돌봄을 잘할 때, 재난 관련 업무와 생활을 분리할 때, 자신의 업무에 가치를 인식하고 만족감을 가질 때, 사회적인 지지를 받을 때 공감을 통한 2차 트라우마에 빠지지 않고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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