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춘추관, 32년 만에 역사 속으로

마지막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소회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달 9일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떠난다. 이튿날 취임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청와대에 입주하지 않고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국정 업무를 시작한다. 윤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옮기기로 하면서, 청와대는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집무실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다음달 10일 취임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옮기기로 하면서 청와대는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집무실로서 역할을 다했다. 청와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지금 춘추관에 있는 기자들은 마지막 청와대 출입 기자다. 사진은 2021년 7월 코로나19 확산으로 폐쇄된 청와대 춘추관 기자실 모습. /연합뉴스


청와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 역시 지난 1990년 완공된 지 3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지금 춘추관에 있는 기자들은 마지막 청와대 출입 기자로 기록될 것이다. 문 대통령과 함께 떠나야 하는 기자들은 ‘청와대 출입’이라는 수식어가 마지막이라는 데 아쉬움을 내비쳤다.

文정부 들어 300명서 1000명으로... 춘추관 개방해 오가는 기자 많아져

A 언론사 청와대 출입 기자는 “하루하루가 갈수록 싱숭생숭하고 아쉽다. 기자들끼리도 마지막 청와대 출입에 대해 대화를 많이 한다”며 “솔직한 심정으로 청와대를 옮기지 않았으면 한다. 역사성과 상징성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B 언론사 기자도 “저희가 마지막일 줄 생각지도 못했다”며 “청와대는 대통령 한 사람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곳이지 않나. 집무실 이전 취지는 이해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는 지난달 20일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밝히면서 “일단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그곳을 벗어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구중궁궐’로 불릴 만큼 민심과 동떨어져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발언이다. 청와대 불통 논란에서 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자협회보가 취재한, 이번 정부 청와대를 오래 출입한 기자들은 임기 초반에만 해도 강한 소통 의지를 느꼈다고 했다. 특히 대폭 늘어난 출입 기자 수와 각본 없는 기자회견이 호평받았다.


C 언론사 기자는 “300여명이던 청와대 출입 기자가 문재인 정부 들어 1000여명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춘추관을 개방해 오가는 기자들이 많아진 점을 높게 평가한다”며 “기자회견 때 보면 문 대통령은 기자들을 존중하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다 됐는데도 추가 질문을 받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기자회견때 존중하는 모습 인상적... 그러나 대통령 직접 마주할 기회는 적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기자들이 직접 마주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임기 동안 기자회견은 8차례가 전부였다. 주요 정책이나 인사에 대해 문 대통령의 의중을 직접 듣기 보다 참모진의 입을 통해 전달받곤 했다. D 언론사 기자는 “대변인이나 소통수석을 통해 메시지를 내는 건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것”이라며 “사면, 개각, 인사, 부동산 문제처럼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사안이 생길 때마다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장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E 언론사 기자는 “참모들이 대통령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까지 밝힐지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길었다”며 “신중한 성격인 문 대통령의 고뇌가 대외 메시지에 담겨야 하는데 스피커들이 제대로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남북관계가 경직되기 시작한 2019년부터 이어졌다고 F 언론사 기자는 말했다. 또한 기성 언론에 대한 적대감이 상황을 악화했다고 봤다. F 기자는 “남북관계가 어그러지고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언론과의 소통을 위한 노력이 줄어든 측면이 있다”며 “특히 이번 정부 인사들은 기성 언론에 대한 선입견이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언론보다는 SNS, 대국민 소통을 더 중요시한 것 같다”고 말했다.


A 기자도 “문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인사들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아픔을 담아 언론을 바라본 듯하다. 그러다 보니 언론 전체를 향한 서운함과 아쉬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며 “어느 정부든 ‘피아 구분’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이번 정부도 그런 지적을 피해갈 수 없었다”고 했다.


윤 당선자는 용산 집무실 아래 층에 프레스센터를 두고, 기자들과 자주 소통하겠다고 직접 밝혔다. 지난달에는 통의동 집무실 앞에 설치된 천막 기자실을 깜짝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용산 시대를 앞둔 상황에서, 마지막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윤 당선자가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정한 소통을 해주길 바랐다. F 기자는 “윤 당선자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소통은 위치나 구조가 아니라 당사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며 “새 집무실에서 기자실 공간 배치를 떠나서 출입 기자들과 상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C 기자는 “대통령과 기자들이 자주 만난다고 해도 ‘점심 뭐 먹었냐’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소통이 아니다”라며 “청와대 기자들의 역할은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하는 것이다.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거나 큰 결정을 내릴 때 기자와 언론을 통해 민심이 잘 반영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소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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