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청년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저성장·양극화 시대를 맞은 청년으로서, 자원의 수도권 쏠림에 황폐해져 가는 지방에 사는 청년으로서 겪는 어려움에 더해 타지방 권역 대비 낮은 산업·상업·문화 인프라 환경으로 기회 부족까지 떠안고 있다.
이는 호남의 역사가 그러했듯 더 높은 확률로 이 지역에서 태어난 이들이 고향을 등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또 떠난 이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비용을 감내해야 하고, 남은 이들은 더 많은 박탈감을 경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청년소멸보고서’는 이 같은 환경에서 오늘의 광주·전남을 살아가는 청년들을 위한 기획이었다.
N포세대? 합리적 선택이자 ‘보이콧’
지난해 초중반 하루가 멀다고 폭등하는 부동산에 ‘흙수저’들의 마지막 계층 사다리라고 하는 코인 시장마저 ‘수저계급론’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청년들의 좌절감과 박탈감은 절정에 이르렀고 기저와 결과 모두 양극화로 모인 게 기획 배경이었다.
지난해 6월14일 첫 보도를 시작으로 12월30일 총 10차례에 걸쳐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기조 속에서 갈수록 벌어지는 자산·소득·일자리·지역격차 등을 다뤘다. 코인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가 빚쟁이가 된 청년들의 이야기, 5평 원룸을 전전하다 부동산값 폭등에 결혼과 아이 낳기를 포기했다는 수많은 청년의 평범한(?) 이야기를 전했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20년 20대 가구 5분위 배율 격차는 38.92배다. 전년도 33.42배에 비해 크게 벌어졌다. 직장을 갖고 어느 정도 자산을 모은다는 30대 5분위 배율은 23.82배다.
청년들에게 이 사회가 공정할까? ‘N포세대’란 말은 지극히 합리적 선택이자, 일종의 ‘보이콧’으로 청년들은 계속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복합쇼핑몰 이슈는 단순 유치 문제일까
무엇보다 양극화의 가장 날카로운 칼끝은 가장 낙후된 지방의 흙수저 청년을 향하고 있다.
낙후된 지방의 가장 큰 문제는 지역에 ‘기회 총량’ 자체가 적다는 것이다. 교육과 일자리, 창업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이런 이유로 지방의 청년들은 수도권 등으로 떠난다. 하지만 낯선 타지의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에서 더 많은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해야 한다. 시작부터 수도권에 태어난 이들의 뒤에서 달려야 하는 셈이다.
광주·전남 청년들은 어떠한가. 2020년 한해 태어난 출생아 수가 1만7000명이지만, 그해 인구순유출이 1만6000명으로 대부분 20~30대 청년으로 추산된다. 이 지역의 청년들이 양극화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에 서 있는 것이다.
‘청년소멸보고서’는 외부적 요인에서만 바라보고 있진 않다. 수도권 집중화라는 거대한 구조를 핑계로 지역 청년들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지역 어른들의 안일함을 청년들은 꼬집고 있다.
최근 광주를 떠들썩하게 만든 ‘복합쇼핑몰 유치 공약’도 사실은 청년소멸보고서 기획 과정에서 나온 이슈다. 지역의 청년들은 수도권은 물론 부산, 대구, 대전 등 타 지역에 있는 코스트코, 프리미엄 아울렛, 복합쇼핑몰 등을 원한다고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지역에서 그런 목소리는 소상공인을 위협하는 ‘유해한 목소리’였을 뿐이다. 광주·전남 청년들은 이런 부분에서조차 ‘경험의 격차’를 체감하고, 좌절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오늘의 지역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있다
“너무 비관적으로 말씀하시는데, 저는 광주가 매력적이고 살만하다고 생각해요. 무수히 많은 청년들이 광주가 좋아서 살고 있고요.”
올해 초 우연한 기회에 청년포럼 발제자로 참석해 지역 청년들의 비관적 현실을 얘기하던 차, 광주 양림동에서 문화기획자로 10년 가까이 일한 김꽃비씨의 공개적인 반박이 필자의 앞통수를 냅다 후려갈겼다.
광주가 자랑하는 양림동은 사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하지만 광주가 소중해 마지않는 지금의 양림동은 사실 김꽃비씨와 같은 무수히 많은 이들이 잠재력을 알아보고, 파괴로부터 지켜낸 곳이자 세련되게 다듬어서 세상에 선보인 곳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 지역의 청년들이 있는 힘을 다해 척박한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어 한 줄기 희망을 피워내고 있었다. 이들이 있기에 지역에서 무수히 많은 재미난 일들이 일어나고, 지역의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때 생각해낸 게 ‘지방청년희망보고서’이다. 기획의 첫 번째를 꼭 김꽃비씨로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이기도 했다. 비록 비옥하지 못한 환경일지라도 지역에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고 그게 조금이라도 청년을 이야기했던 기자로서의 과제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소멸보고서에서 지방청년희망보고서로 이어지는 기획은 일종의 같은 메시지인 셈이다. 결국, 청년이 희망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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