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이 '윤석열-삼부토건 유착 정황 녹취록' 보도를 보류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자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라며 "취재보도준칙을 기준 삼아 기사 출고를 보류했다"고 해명했다.
한겨레는 18일 저녁 <'삼부토건 녹취록 보도 보류' 경위를 설명드립니다>라는 설명문을 내어 "삼부토건 조남욱 전 회장 일가 녹취록 보도 여부에 대한 한겨레의 판단을 두고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이날 SNS와 온라인 기사 등을 통해 알려졌다"면서 "이에 대해 한겨레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했는지 설명드린다"고 했다.
앞서 삼부토건 녹취록 보도 논란은 17일 김완 한겨레 탐사팀 기자가 사내 구성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이튿날 외부로 퍼지면서 알려졌다.
김 기자는 이메일을 통해 "2005년·2011년 삼부토건 수사 당시 (검사이던) 윤석열 후보의 역할, 윤석열 캠프와 조시연 부사장(조남욱 회장 아들)의 연루 정황 등이 담겨 있는 대화파일을 단독 입수했다"면서 정상적인 과정을 밟아 작성한 기사가 1판 지면에 실렸다가 제작 과정에서 갑자기 빠졌다고 했다.
이메일에 따르면 김 기자를 포함한 탐사팀은 대선 후보자 검증을 진행하라는 편집국장과 담당 부장의 지시를 받고 이를 취재해왔다. 그 과정에서 조남욱 삼부토건 회장의 아들 조시연 부사장의 사업 파트너로부터 조 회장과 나눈 대화파일을 입수했다. 기자들은 대화록에서 윤 후보가 언급된 부분을 포착해 기사를 작성했다.
아래는 김 기자가 이메일을 통해 공유한 기사 전문 중 일부 문단이다.
조 전 부사장은 이 자리에서 2005년 고양지청 검사였던 윤 후보가 '파주 운정지구 개발사업 수사 과정에서 삼부토건의 범죄 정황을 확인했다'는 취지로 말한다. 당시 사업을 두고 "고양시에서 걸린 게 그것. 삼부 돈 가지고 이것저것 지네들 개인적으로 투자하고 난리치고 그런 게 있어"라며 "(해당 사안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게 윤총(윤석열 검찰총장을 이름)일 거야. 거기 보면 그때 돈 돌린 거, 회삿돈 가지고 돈 돌린 거, 어디에 투자한 거 다 나와"(2월 대화)라고 말한다.
대화 중 지인이 "그럼 그때 잡아넣었어야지"라고 하자, 조 전 부사장은 "돈 잔치를 한 거야"라고, 이어 "그때 저걸 봐준 거네"라는 말에는 "그걸 (윤 검사가) 못 봐준다고 한 건데 영감(조남욱 전 회장)이 막 난리쳐서"라고 답한다. 자금 흐름 등을 파악해 '윤 검사'도 난색을 표했으나 결국 조 전 회장이 힘썼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윤석열 후보 상대의 삼부토건 수사 무마 시도 정황은 11시간 대화에서 반복해 설명된다.
김 기자는 이메일에서 "(기사를 작성한 뒤) 지난 15일 편집위원회 회의에 보고했고 16일 오후 1면·5면 기사로 게재한다는 지면계획이 확정됐다"며 "16일 지면 제작이 완료되어가던 상황에서 갑자기 기사가 빠지는 것으로 결정이 번복됐다"고 했다.
이후 김 기자는 '일부 편집위원이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했고, 편집위원회 재논의 후 기사 게재 여부를 재판단하겠다'는 전달을 받았다. 17일 열린 회의에서 다수의 편집위원이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면서 '워딩 기반 기사인데 워딩만으로 수사 무마 입증이 약하다', '시기적으로 예민하다', '기사 나갔을 때의 반향과 파장을 생각하면 보도 실익이 없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국장단은 최종적으로 기사 게재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 기자는 "편집위원회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전체 구성원에게 기사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이메일을 보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취재기자들이 확보한 워딩은 수사 무마를 직접 청탁한 당사자의 발언"이라며 "조시연의 발언은 한겨레가 지난 2019년부터 보도해 온 삼부토건-검찰 유착의 가장 유력한 자의, 최고위급의 언급이기도 하다. 워딩은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수사 무마 상황을 진술하고 있다"고 했다.
김 기자는 "시기적 문제나 보도 실익 문제를 이유로 (…) 보도를 막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언론의 가치와 저널리즘의 책무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해야지, 사실을 알았더라도 정치적 시기와 파장을 고민해 보도를 미루는 것이 우리의 태도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당 글이 온라인상에서 확산하자 한겨레는 공식 설명문을 내고 그간의 논의 과정과 기사를 바로 내지 않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한겨레는 18일 "15일 오후 국장단이 처음 의견을 나눴다. 삼부토건 일가의 발언 녹취록을 입수했지만 이 내용을 사실로 입증할 보강 취재가 필요해 보인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었고, 기사 출고 보류를 결정했다"며 "그날 저녁 현장기자의 요청으로 국장단 일부와 면담이 이뤄졌다. (국장단은) 기사의 부족한 점 등을 지적하고 기사를 수정 보고하면 재논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기사 수정 보고는 16일 오후에 이뤄졌다. 기사를 우선 작성해보라고 국장단이 지시했다. 기사를 보고 최종 판단할 계획이었다"며 "오후 5시30분께 기사 초고가 나온 뒤 두 번째 국장단 회의가 열렸고 '콘텐츠 편집회의'에서 토론이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매일 오전 열리는 편집회의는 취재부서장(편집위원 20여명)이 참여해 그날의 주요 기사의 보도 여부와 논조 등을 토론하고 결정짓는 편집국의 가장 중요한 회의체"라며 "이 기사는 오후에 보고된 탓에 편집회의에서 토론하지 못했다. 중대한 사안이기에 편집위원 의견 청취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17일 열린 편집회의에서 기사 초고를 읽은 편집위원들은 '취재를 보강해야 보도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국장단은 이에 따라 기사 출고를 보류하기로 했다. 한겨레는 "보도 여부를 결정할 때 취재보도준칙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 기사 초고는 삼부토건 일가의 발언을 담고 있지만, 그 내용이 전언과 추정으로 읽혀 추가 확인 없이 청탁의 증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구체적으로 무엇을 봐줬다는 것인지, 윤석열 후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더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부연했다.
이어 한겨레는 "국장단 회의와 편집회의를 거쳐 신속성보다는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사 보도를 보류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보도의 정확성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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