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지망한다 하면, 지인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봐"

언론사 지망생 5인 심층 인터뷰

사진=freepik.com

기자 지망생 최하윤(가명·27)씨는 언론사 인턴을 쉬지 않고 해왔다. 스펙 쌓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자가 되는 걸 반대하는 부모님에게 ‘잘 해낼 수 있다’고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어서다. 부모님은 항상 하윤씨의 선택을 믿어주는 분들이었다. 특정 대학을 가야한다거나 학교 성적에 부담을 주는 편도 아니었다. 그런데 “기자가 되고 싶다”는 말엔 다른 반응이었다. 응원보단 반대가 컸고, 하윤씨는 그 시선을 이겨내는 중이다.


“부모님은 기자가 사회적 평판이 안 좋은 데 비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여자보단 남자에게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지금도 언론고시(언론사 입사) 공부하는 걸 안 좋아하세요. 기자 일에 흥미가 있고, 즐겁게 공부하고 있고,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려야 하니까 인턴이든 뭐든 계속 해야 했어요.”(최하윤)


하윤씨뿐 아니라 많은 기자 지망생이 이런 눈초리를 경험했다. 기자협회보가 인터뷰한 지망생 5명 모두 “가족과 지인들이 기자라는 직업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고 했다. 신문기자를 지망하는 유지운(가명·25)씨는 부모님에게 ‘네가 기자로 자리 잡을 마흔 살 쯤에도 신문이 계속 있을 것 같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친구들은 이렇게도 말했다. “요즘 기자는 커뮤니티 글 가져와서 누리꾼 반응만 전하던데, 그걸 왜 해?”

◇언론사가 자초한 평판… 스스로 풀어내야
지운씨는 언론사가 스스로 부정적인 평판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이 언급한 대로 사실 확인 없이 쓰는 커뮤니티발 가십 기사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기본을 지키지 않은 기사가 언론과 기자의 신뢰를 깎아내린다는 사실을 체감한 것이다.


“얼마 전에 데일리안이 쓴 ‘고등학생 아들이 대학생을 임신시켰습니다’라는 기사를 보고 충격 받았어요. 자극적인 제목에 취재원도 확보하지 않고 커뮤니티 글을 긁어오기만 한 거예요. 네이버에서 조회수 1위였는데 그걸 본 사람들은 언론사와 기자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저널리즘을 공부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첫 번째 원칙은 사실 확인이잖아요. 기본도 지키지 않은 기사들이 쏟아지는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까워요.”(유지운)

“팩트체크도 없이 쓰는 가십기사들, 언론·기자에 대한 신뢰 깎아내려”

이채영(가명·27)씨도 언론사들의 보도 행태가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들 디지털 대응을 한다지만 결국 조회수에 매몰되고, 독자들이 언론 역할에 효능감을 느끼는 기사는 사실상 뉴스유통 시장의 전부인 포털에선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요즘 대선 보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채영씨는 “시민 한 사람으로서 누굴 뽑아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언론이 각 후보의 자질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포털엔 ‘누가 이렇게 말했다’는 따옴표만 넘쳐난다. 아직도 자극적인 보도들이 포털을 메우고 있으니까 모든 기사가 그런 것처럼 비춰져 전체 기자가 욕을 먹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언론사들은 디지털 혁신과 함께 뉴스 이용자와 접점을 늘리면서 ‘우리 집’(홈페이지 등 자체 플랫폼)으로 와달라며 손짓하는 중이다. 그러나 기자 지망생들의 눈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채영씨는 언론사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독자들과 멀리 떨어져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새로운 독자층을 끌어들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지만 정작 독자들에겐 와 닿지 않는 것 같아서다.


“디지털 전략은 그 자체보단 독자의 이해를 돕고 고품질 콘텐츠를 뽑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디지털 대응한다’로만 끝나선 안 된다는 거죠. 이목을 끌려고 만든 인터랙티브 기사가 과한 장치 때문에 오히려 독자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도 있거든요.”(이채영)


해외 매체 여러 곳을 유료 구독하고 있는 박유나(가명·26)씨는 국내 언론사 사이트는 가독성이 떨어져 오래 머물기 어렵다고 했다. 포털뿐 아니라 언론사 사이트 메인에도 자극적인 기사가 노출되다보니 독자 입장에서 중요한 기사를 제때 보지 못 한다고 느낄 때가 많다. 유나씨가 유료 구독 중인 해외 매체 기사와 이를 인용한 국내 언론 보도를 비교하면 국내 언론사가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인용 보도 덕분에 국내 독자들은 해외 기사를 공짜로 볼 수 있어요. 그런데 해외 언론사 사이트에서 보면 차이가 커요. 기사 하나에 타임라인부터 배경, 전망, 각종 분석이 담겨있거든요. 반면에 국내 인용 보도는 팩트 몇 줄로 끝이에요. 그러다 보니 중요한 이슈인데도 놓치는 경우가 많죠. 해외 매체에 매달 몇 만원씩 구독료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예요.”(박유나)

◇기자, 우리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믿음
언론계는 기자 지망생들이 지적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조회수에 매몰된 저질 기사 중단, 독자층 확대, 탈 포털, 새로운 수익 모델 마련,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 모두 평탄치 않아 보인다. 언론사와 기자라는 업에 회의를 느낀 주니어들의 탈출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지망생들을 여기 붙들어놓는 건 기자는 우리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믿음’이다.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은 욕심, 거기서 작은 보람을 느끼며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서다.


기자협회보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0일까지 기자 지망생 5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도 ‘기자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이 길을 계속 가고 있다는 응답이 대다수였다. 한 지망생은 “저널리즘이 위기라고들 하지만 불신이 팽배해질수록 대중에게는 정말 믿을만한 저널리즘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를 전달해서 시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기자는 공익을 위해 일하는 직업… 사회 바꾸는 기사 보면 뭉클해져”

또 다른 지망생도 “불신감을 없애는 일은 언론과 기자의 몫”이라며 “그 일에 보탬이 되고 싶다. 주변 사람부터 시민들에게까지 믿을 수 있는 기자가 있다는 걸 기사로 보여주고 싶다”고 적었다.


정한빈(가명·27)씨는 낯부끄러운 기사에 실망했다가도 제도 변화까지 이끈 기사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인턴기자 생활을 하며 경험한 크고 작은 기쁨을 계속 느끼고 싶다. “이달의기자상이나 한국기자상을 탄 선배들의 수상 후기를 보면 뭉클할 때가 많더라고요. 기자가 아무리 비난받는다고 해도 좋은 기사는 우리사회를 바꾸는 계기가 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열심히 하다보면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저에겐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아요.”(정한빈)


이들은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직업의식 자체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3년째 공부 중인 유나씨도 수험 기간이 길어진 만큼 늘 불안과 싸우고 있다. 주변의 우려와 걱정에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직업을 선택할 때 일과 삶의 균형이라든지 임금이라든지 여러 요소가 있잖아요. 저는 직업적인 소명의식에 가치를 많이 두나 봐요. 사회적으로 평판이 안 좋고, 일이 힘들더라도 기자로 살면서 느끼는 뿌듯함이 클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도전하고 있어요.”(박유나)


위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지망생도 “최전선에서 정보를 접하고, 콘텐츠를 생산하고, 아젠다를 세팅하고, 공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이 모든 걸 글로 표현하는 것은 내가 사는 세상을 계속 이해하고 탐구해나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기자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지망생은 “내 말 한 마디, 문장 하나가 적어도 한 사람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유의미한 것 같아 순탄치 않은 기자의 길도 각오하고 꿈꾸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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