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방송계와 영화계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12, 13일 잇따라 영화진흥위원장과 방송위원장이 사표를 낸 것이다. 영화계는 개혁정책을 추진하던 신세길 영진위원장에게 문화관광부가 사표를 종용했다는 '설'로, 방송계는 청와대가 내년 총선 전에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방송위원장을 교체했다는 '설'로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우리 사회 담론과 문화를 주도하는, 내로라 하는 지성인들로 이뤄진 언론계와 영화계가 '설' 정도로 이렇게 호들갑을 떨다니…. '병적 불신'으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병이 그렇듯 여기에도 원인이 있다.
개개인의 심리발달과 마찬가지로 한 사회도 발달단계마다 과제가 있다. 과제를 성취하지 못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전 단계 과제에 집착해 병이 생긴다. 병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과제를 성취하는 것은 더 어려워진다.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은 한 간담회에서 "위성방송, 디지털방송 등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선 정부가 방송정책권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소신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우리 방송은 외부의 간섭으로부터의 독립에만 지나치게 치중하다 보니 방송의 공익성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성찰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성토했다.
박 장관의 말 속에는 우리 방송인과 영화인이 '불신'이란 고질병을 얻게 된 원인과 해답이 모두 들어 있다. 정책권 즉 자율권을 갖지 못하니 외부로부터 독립하는 데 열중하게 되고 따라서 제대로 된 정체성, 생산성을 갖지 못하게 된다. 이루고 넘어가야 하는 데 못 이루고 못 넘어가니 병적 증상이 나타날 수 밖에…. '병인'은 그냥 둔 채 증상만 치유하려 든다면 병은 영영 고칠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방송을, 영화를, 문화를 그렇게 죽이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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