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 밀착, 지역민과 함께…독자와 연결 시도한 지역언론사들

지난 12일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서 '2021 지역신문 컨퍼런스' 열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더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기성 언론과 독자와의 연결고리는 약해져만 가고 있다. 언론과 독자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길은 무엇일지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독자와 다방면으로 연결을 시도한 지역 언론의 사례들이 소개돼 눈길을 끈다. 지난 12일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주최로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1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선 지역민들과 함께 콘텐츠를 제작하고,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데 앞장선 지역 언론사들이 자사의 노력과 성과, 한계를 허심탄회하게 공유했다.

지역민과 밀착한 보도부터 지역민과 함께 제작한 콘텐츠까지

가장 많이 공유된 경험은 지역민과 밀착한 각종 보도들이었다. 마을의 일꾼인 이장이 진정으로 마을을 대표하고 있는지, 연속 보도를 통해 파헤친 이창섭 해남신문 기자는 “코로나 시대 이장의 위상과 역할이 한층 커지고 있지만 이장 선거 과정에서의 잇따른 잡음과 일부 이장들의 일탈을 보며 그들이 진정으로 마을을 대표하는지 의문이 들었다”면서 “그래서 올해 초부터 이장 선거 과정의 문제점, 마을발전기금을 빙자한 수상한 돈 거래, 비리 이장에 대한 자격제한 필요 등을 보도했다”고 말했다.

실제 해남신문의 보도 이후 문제가 된 이장단은 공개 사과문을 내고 사퇴를 했고, 해남군에선 10년 만에 이장 임명에 관한 규칙을 개정했다. 해남군은 지난 5월엔 앞면에는 마을 이름과 성명, 휴대전화번호가, 뒷면에는 마을 관광지와 농축산물이 적힌 명함을 이장 514명에게 배부하기도 했다. 이창섭 기자는 “명함을 줄만큼 이장의 무게감이 커졌다는 뜻”이라며 “사실 문제 있는 이장님들은 아주 일부다. 앞으로 이장님들이 진정으로 마을의 자긍심이 되고 지역민들의 소통 창구가 될 수 있도록 해남신문에서 계속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주최로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2021 지역신문 컨퍼런스’가 열렸다. 사진은 세션 7에 참여한 정민혜 충청투데이 기자(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김준용 국제신문 기자, 이지효 중부매일 기자가 사회자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 모습.

국제신문은 지역민들이 쓰는 방언과 관련한 콘텐츠를 기획하기도 했다. 김준용 국제신문 기자는 “부산이 가진 또 하나의 자산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부산 말이 참 재밌다”며 “예전엔 방언을 사용하는 걸 별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난 것 같다. 그렇다면 좀 더 우리가 방언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관련 기획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제신문은 ‘부산말 사전’과 ‘부산말 시네마’를 통해 부산말을 조명했다. 부산말 사전은 지역 방언 사전으로, 검색 창에 ‘천지빼까리’를 입력하면 ‘아주 흔할 정도로 많음’이라고 뜻이 나오는 식이다. 부산말 시네마는 부산의 한 극단을 섭외해 영화 20여편을 부산말로 더빙해 재촬영했다. 김준용 기자는 “다만 좀 아쉬움이 남는 작업이었다. 유튜브 조회 수가 저조했고, 제가 40년 가까이 써왔던 말인데도 어떤 것이 부산말인지 분류하는 게 상당히 어려웠다”며 “그럼에도 저희가 이 기획을 하게 된 이유는 표준어가 과연 뭔데, 하는 오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지역어 사용자가 광화문에서 부끄럽지 않게 자기 동네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지역 밀착을 넘어 지역민들과 함께 콘텐츠를 제작한 시도들도 이번 컨퍼런스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주민과 청년인턴, 기자 3주체가 함께 온라인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옥천신문이 그 중 한 사례였다. 권오성 옥천신문 기자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2015년 이후부터 온라인에 기반한 영상과 음성 콘텐츠에 관심을 가졌지만, 영상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선 취재기자와 편집기자 등 최소 3명의 인원이 필요했다”며 “결국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실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올해 상반기 주민과 청년인턴, 기자가 결합한 모델을 만들고 옥천 주민을 프로듀서로, 대학생들을 청년 인턴기자로 발탁해 이들과 함께 ‘안녕 옥천’ 유튜브를 운영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옥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지역 명소 및 가게, 교통 문제·주민자치 등 지역 현안까지 다방면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다뤘다. 권오성 기자는 “영상 제작을 시작한 지 불과 6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콘텐츠를 과감히 시도하는 등 성과를 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자본이나 인원에서 뒤질 수밖에 없는 지역 신문에 3자 모델은 새로운 도전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동력이 됐다”며 “이번 경험을 토대로 옥천신문은 지역 공동체와 함께 만들어가는 보도를 더욱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주최로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2021 지역신문 컨퍼런스’가 열렸다. 사진은 컨퍼런스 참가자가 지역 언론사들의 전시물을 보고 있는 모습.

중부매일 역시 월 1회 지역민이 참여한 지면을 보도하고 있다며 자사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지효 중부매일 기자는 “직업 기자들과 다른 관점으로 사안에 접근해 새로운 뉴스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고, 시민기자의 시각에서 지역민들의 삶을 조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을 기자단을 꾸리게 됐다”며 “중부매일이 ‘충청 플랫폼’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콘텐츠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부매일은 매월 2개 면을 할애해 충북 청주 ‘옥산소식지’, 충북 제천 ‘남제천 봉화재 사람들’, 대전 ‘별밭마을신문’의 시민기자들이 마을 단위의 지역 밀착형 기사를 싣도록 했다. 이지효 기자는 “시민기자들은 기존 전통 언론이 다루지 못한 세세한 지역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했고, 독자 반응도 좋았다”며 “청주, 제천, 대전 마을 기자들이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과 열정을 가진 덕분에 지역 주민이 뉴스를 읽는 객체에서 뉴스를 만드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역민 위해 프로그램 만들고, 지역 공동체 강화하기 위해 앞장서는 언론사들

콘텐츠를 넘어 지역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든 지역 언론사도 있었다. 충청투데이는 지역의 소외계층 아이들을 경제적·정서적으로 지원하는 ‘숨은 보석 찾기 캠페인’과 ‘한화-카이스트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이번 컨퍼런스에서 소개했다. 최윤서 충청투데이 기자는 “인재양성 프로그램의 경우 지난 2016년부터 지금까지 진행해오고 있다”며 “연간 대전 지역 중학생 30~50명을 뽑아 카이스트 대학생과 연결해 각종 교육과 진로진학 설계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보석 찾기 캠페인 역시 조손가정이나 양육시설 아동, 한부모 가정 아이들에게 정기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현재까지 12명의 학생들에게 총 5280만원을 전달했다. 최윤서 기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찾고 있는 아이들에게 차별 없는 교육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라며 “철저한 사후 관리와 사업 확장으로 언론이 주도하는 새로운 교육 모델이 안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주최로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2021 지역신문 컨퍼런스’가 열렸다. 사진은 최윤서 충청투데이 기자가 ‘미래인재 육성 프로젝트 희망의 날갯짓’을 주제로 발표하는 모습.

경북일보도 어린이들의 안전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안전골든벨 어린이 퀴즈쇼’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황영우 경북일보 기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어린이 스스로 위험 상황에 대처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퀴즈쇼를 기획하고 개최하고 있다”며 “골든벨 형식으로 사회자가 각종 위험에 대비하는 조치 등 안전 상식 관련 문제를 출제하면, 참가자들이 보드판에 답을 기재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경북일보에 따르면 지난 7년간 경북과 대구 어린이 2만7900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2017년 경주와 포항 지진, 지난해 코로나19 등 대형 재난 때마다 프로그램에 관련 내용을 반영하기도 했다. 황영우 기자는 “코로나로 인해 지난해 9월부턴 비대면 온라인 퀴즈쇼 형태로 변경, ‘줌(ZOOM)’을 통해 지역 참가자들과 소통하고 있다”며 “지역 언론이 지역 사회 구성원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공동체의 강화를 위해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낸 지역 언론사도 있었다. 도시재생뉴딜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기획기사와 인터뷰, 안내보도는 물론 직접 주민들과 활동한 남해시대의 사례가 한 예다. 전병권 남해시대 편집국장은 “예산도 범위도 종류도 다양한 도시재생뉴딜사업을 지역 신문사가 전부 감당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며 “그러나 재정자립도가 올해 기준 7.07%에 불과한 남해군에선 이 사업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사업이었다. 이 때문에 사업의 성공 요인이 ‘주민 참여’에 있다고 보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남해시대는 우분트학부모기획단, 새마을운동남해군지회 등 지역 시민사회단체 등과 함께 다양한 행사를 열며 사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한편 기자가 직접 도시재생뉴딜대학을 수강하는 등 사업의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전병권 국장은 “기자이지만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사업이 우리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참여형 보도를 했다”며 “그 결과 주민 분들이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다”고 했다.

지난 12일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주최로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2021 지역신문 컨퍼런스’가 열렸다. 사진은 전병권 남해시대 편집국장이 ‘주민들의 마음을 재생하는 지역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하는 모습.

코로나19로 사랑방이었던 마을회관이 문을 닫으면서, 농촌 공동체가 위기를 맞자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한 언론사도 있었다. 조아름 해남우리신문 기자는 “어르신들의 삶이 건강할 때 농촌의 공동체도 유지된다는 생각으로 해남우리신문은 연호마을 주민들이 만든, 마을기업 연호와 지난해 5월 ‘해남형 마을공동체 조성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며 “이를 통해 어르신들과 세상의 끈을 이어줄 소소한 일들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연호마을 부녀회원들이 월 1회 어르신들에게 죽 배달을 하거나, 할머니들이 그 마음이 고맙다며 5만원, 20만원 준 쌈짓돈을 장학기금으로 만들어 지역 중학교에게 전달하는 일들이 그것이다. 해바라기 소풍, 사진 전시회, 마을학교 개강과 졸업식, 수제맥주 시음 버스킹 등 다양한 행사도 진행했다.

조아름 기자는 “해남우리신문은 이 과정을 모두 동행 취재하고 주민들과 1대 1 인터뷰를 진행해 올해 초 두 번째 채록집 ‘코로나19, 우린 더 단단해졌어요’를 발간했다”며 “해남은 매년 인구가 1500여명 가까이 줄 만큼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해졌다. 우리가 연호마을에 주목하는 것은 지역 공동체가 마을을 살리고, 이로 인해 젊은이가 돌아오는 마을을 만들 수 있다는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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