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노사가 '사장‧각 부문 최고책임자 임명동의제' 존폐를 두고 대립하면서 사상 초유의 무단협 사태가 발생했다. 임명동의제 폐지를 요구하는 사측은 노조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사측이 일방적인 합의 파기로 구성원들까지 위협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SBS 단체협약은 지난 3일 0시를 기해 사라졌다. SBS 구성원들의 임금, 인사, 휴가, 고용안정, 노조활동, 공정방송, 임명동의제 시행 등을 담은 문서가 하루 아침에 효력을 잃었다.
무단협 사태의 발단은 지난 1월 사측의 '10‧13합의' 폐기 통보였다. SBS 노사는 지난 2017년 10월13일 사장, 편성, 시사교양, 보도 등 각 부문 최고책임자에 대한 직원들의 임명동의제 시행(재적 인원 60% 이상 반대시 임명 철회)에 합의했다. 이듬해 단협에도 임명동의제 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사측은 임명동의제를 문제 삼아 올 초 10‧13합의에 이어 지난 4월 단협 해지까지 통고했다.
이후 협상에서 노조는 임명동의제 폐지와 무단협 사태를 막기 위해 수정안을 제시했다. 기존 임명동의 대상의 핵심인 사장을 제외하는 대신 각 부문 국장급을 추가하고, 사장에 대한 중간평가를 실시하는 방안이었다. 사측은 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사는 사측의 단협 해지 통고 후 6개월 내에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지난 3일부로 SBS는 무단협 상태가 됐다.
사측은 지난 5일 사내 알림문을 통해 "전임 노조가 자행한 노사 합의 파괴행위들로 단협 해지까지 왔다"며 노조에 책임을 돌렸다. 사측은 지난 2019년 다시 불거진 노사 갈등 과정에서 전임 노조 집행부가 경영진을 4차례 고발한 것이 노사가 신의를 바탕으로 맺은 10‧13합의를 파기한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측은 "노사 관계가 직원들의 근로조건과 무관한 임명동의제로 인해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면서 "회사는 10‧13합의 원인무효로 인한 단협의 '경영진 임명동의제 삭제' 후 공정방송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자며 TF 설치를 공식 제안했지만 노조는 임명동의제 사수만을 반복하며 회사의 모든 제안을 거부했다"고 했다.
사측은 "경영진 임명동의제는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로서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노조위원장이 인사권, 경영권을 수시로 침해할 수 있는 제도"라며 "10‧13합의는 노조의 일방적 파기로 완전히 소멸됐다. 노조가 10‧13합의 내용에만 집착한다면 그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직원들의 불이익에 대한 모든 책임은 노조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반면 노조는 "임명동의제는 소유‧경영 분리의 최소한의 담보 장치"라며 사측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는 지난 6일 발행한 노보에서 "임명동의제는 구성원들이 대표이사를 직접 선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부적합한 인사를 임명할 경우 거부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하는 것뿐"이라며 "공정방송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소극적 장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노조는 "임명동의제는 사장 등 경영진에게도 대주주의 부당한 개입이 있을 때나 내부의 부적절한 행위가 감지될 때 공정방송과 독립경영을 실현할 수 있는 명분과 수단이 될 수 있다"며 "노사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장치인데도 고작 2번(2017‧2019년)의 작동 끝에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했다.
정형택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7일 구성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임명동의제로 인해 사측의 정상적인 경영활동과 이익 추구 행위가 단 한 차례도 방해받은 사례가 없다는 것은 사측도 지난 본 교섭에서 인정한 바 있다"며 "'노조위원장 동의제'로 변질됐다는 사측의 주장은 억지를 넘어 지금까지 주체적 판단으로 SBS를 발전시킨 구성원에 대한 무시이자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 본부장은 "사측이 생각하는 '그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직원들의 불이익'이 무엇이든 즉각 멈출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며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으려 한다면 더 큰 저항을 불러오리라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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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합의’ 내용과 체결 과정
2017년 10월13일 SBS 노사 대표자와 윤석민 SBS 미디어홀딩스 부회장이 맺은 협약. SBS 대표이사 사장과 보도·편성·시사교양 등 각 부문 최고책임자에 대해 임명동의제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핵심.
2017년 당시 윤세영 SBS 회장은 박근혜 정부 동안 자사 보도본부 간부들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도우라"는 지침을 지속적으로 내리고, 윤 회장의 아들인 윤석민 SBS 미디어홀딩스 부회장은 인제 스피디움 등 태영건설의 각종 이권 사업에 SBS를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았음. 여러 의혹에 내몰리자 SBS 사주 일가는 그해 9월 "경영과 방송에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한 달 후인 10월13일 노사 대표와 윤석민 SBS미디어홀딩스 부회장은 합의문에 서명.
당시 SBS는 사장 임명동의제를 홍보하는 사보 발행. 10월19일 발행된 SBS 사보(제1088호) 제목은 <한국 방송 사상 최초! SBS 노사 양측, 사장 임명동의제 합의. 공정방송의 확고한 기틀 다졌다>. SBS는 사보에서 "임명동의제는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으로서 국내방송 역사에 없었던 획기적인 조치다"라고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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