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수능점수, 원인도 '헛손질'

"학력저하 탓" 엉뚱한 화살…성적중심 관행 벗어나야

현장 무시, 성적중심의 보도관행, 언론사간 경쟁이 결국 수능시험 대형 오보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점수가 낮게 나온 한 여학생은 작년보다 수능 점수가 10∼20점 정도 높아질 것이라는 언론보도를 보고 이를 비관, 투신자살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은 ‘빗나간 예측’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엉뚱하게 수험생의 ‘학력저하’를 들고 나오는 등 성적 중심의 보도 관행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련기사 2·3면

이같은 언론의 대형 오보는 무엇보다 언론의 과열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이번 수능의 경우 언론의 과열경쟁과 혼란을 막기 위해 공신력 있는 평가원에서 시험 다음날 가채점 결과를 발표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부정확한 사설입시학원들의 분석 결과를 맹목적으로 보도하며 속보 경쟁을 벌임으로써 대형 오보를 냈다. 교육부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사설입시학원의 분석 결과는 매년 오차가 있어왔고 정확성이 떨어진다”며 “무엇보다 재수생과 고득점자가 많은 유명 입시학원의 특성상 표본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 취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지적도 낳고 있다. 출제위원장과 일부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을 상대로 취재를 하기는 했으나 사설입시학원들의 자료를 그대로 받아 보도해온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작년 수능이 사상 최대로 어렵게 출제된 만큼 이번에는 쉽게 출제될 것이라는 선입견과 사설입시학원들의 오류 가능성을 무시한 것이 결국 오보로 연결된 셈이다. 반면 수험생들과 일선 고교 등 현장 취재를 중심으로 보도한 문화일보는 유일하게 이번 오보 사태에서 비껴가 현장 취재의 중요성을 확인시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대형 오보를 낸 언론들이 수능 점수가 낮아진 원인을 ‘이해찬 세대’의 ‘학력저하’ 때문으로 몰고 가는 것은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상당수 신문은 ‘학력저하 방치할 수 없다’(동아), ‘점수 더 떨어진 이해찬 2세대’(중앙) 등 사설과 기사를 통해 “입시학원의 예측과 달리 점수가 떨어진 것은 재학생의 학력저하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라며 점수가 낮아진 원인을 재학생들의 ‘학력저하’로 몰고 갔다. 이에 대해 박홍기 대한매일 차장은 “똑같은 시험을 치르게 한 것도 아닌데, 수능 한번보고 평균 점수가 몇 점 떨어졌다고 해서 학력저하로몰고 가는 것은 근거가 없다”며 “올해 점수가 오른 재수생들도 작년에는 학력저하 소리를 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점수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고 하는 보도관행과도 맞물려 있다. 2000년에는 수능이 쉬었다며 변별력이 없어 문제라고 지적했다가, 지난해에는 수능이 어려워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흥분하고, 올해는 예상보다 점수가 안 오르자 학력저하를 문제삼는 등 근본적인 원인진단보다 그때그때 점수를 놓고 성급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수위주의 속보경쟁은 매년 크고 작은 오보를 낳았다. 실제 지난해에도 20점 정도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60점 가까이 점수가 하락하는 등 점수위주의 예측보도는 빗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김선주 한겨레 논설위원은 “학력저하를 문제 삼으면서 한편으로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라며 “점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풍토와 이를 부추기는 언론의 보도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미영 기자 [email protected] 박미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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