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사들이 새로 고려하는 지표는 ‘오픈율’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뉴스레터 서비스를 처음 시작하거나 확대 개편한 곳들이 많아지면서 구독자 수뿐 아니라 실제 이메일을 열어보는 비율이 중요해진 것이다.
언론계에 부는 뉴스레터 바람이 처음은 아니다. 그간 실험에 그쳤던 뉴스레터가 진화했다. 지금 언론사들이 선보이는 뉴스레터는 단순히 기존 기사를 요약·나열했던 이전과 달리 명확한 타깃, 차별화한 내용, 오리지널 콘텐츠 등을 내세우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기성언론이 만든 뉴스레터 성공 모델이 탄생할지 기대를 모은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매일경제, SBS, 중앙일보, 조선일보, 한국경제, 한국일보, 한겨레 등이 새로운 뉴스레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1월 신현규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과 이상덕 디지털테크부 기자가 매주 3차례 발송하는 ‘미라클레터’는 구독자 2만명을 확보하며 이목을 끌었다. IT분야를 취재하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만드는 ‘팩플레터’도 지난해 7월 론칭 이후 주목받고 있는 뉴스레터다.
회사 차원에서 가장 적극적인 곳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9월 데일리 뉴스 브리핑인 ‘강인선의 모닝라이브’와 함께 국제 경제, 데이터, 중국, 음식 등 7개 분야의 뉴스레터를 선보였다. 내부 기대보다 구독자들의 반응이 커 그해 11월 ‘5분 칼럼’, ‘당신의 돈’ 등을 더해 총 16개로 확대했다. 서비스 시작 3개월 만에(지난해 11월 기준) 구독자 1만여명을 모았다. 세 번째 신규 출범도 준비 중이다.
강인선 조선일보 뉴스레터팀장(외교안보·국제담당 에디터)은 “독자들이 뉴스를 소비하는 방법이 다양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뉴스레터를 시작했다”며 “무엇보다 지속가능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 가지 주제로 다양한 레터를 쓸 수 있는 필자를 찾았다. 디지털의 자유와 유연성, 순발력을 충분히 활용해 더 재미있게 만들어보려 한다”고 설명했다.
기존 기사 요약·나열했던 것과 달리 타깃·내용 적시해 자체 콘텐츠 제작
언론사들이 뉴스레터를 다시 찾은 이유는 뉴스 소비행태 변화에 따라 △디지털에서 구독자 확보 △이들과의 소통·멤버십 강화 △새로운 콘텐츠 전달 통로 구축 △수익모델 마련 등으로 볼 수 있다. 수익모델로써 후원제 도입과 디지털 전환을 추진 중인 한겨레는 이를 가속화하기 위해 뉴스레터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달 주간 뉴스레터 ‘휘클리’를 시작한 데 이어 지난 22일부턴 데일리 뉴스 브리핑 ‘H:730’을 발송하고 있다.
한겨레 뉴스레터를 전담하는 권지담 기자는 “뉴스레터를 통해 새로운 독자를 찾아가는 동시에 기존 독자들과 멤버십을 형성하고 추가적인 서비스를 줄 수 있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며 “쉽지만 알차게 정리한 뉴스, 미처 발견되지 못한 좋은 뉴스들을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선보이는 두 뉴스레터의 타깃과 목적은 명확하게 구분된다. 휘클리의 대상 독자는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은 취준생부터 팀장급 이하의 회사원이다. 실제 구독자가 보내온 답장·의견을 보면 예상 타깃과 동일하다. 1호, 2호로 불리는 화자(기자들)가 반말에 친근한 어투를 사용한다. 특정 이슈를 두고 한겨레 취재기자들과 편하게 질문을 주고받은 뉴스레터 전용 콘텐츠도 담는다. 반면 H:730의 타깃은 한겨레 종이신문 구독자다. 여기선 한겨레 편집국 부국장들이 존댓말로 말을 건네며 자신이 고른 뉴스를 전한다. 기존 독자들과 스킨십을 늘리려는 시도다.
‘좁고 명확한 타깃’은 뉴스레터의 성공 법칙처럼 여겨진다. 2019년 12월 20대를 대상으로 3줄 요약 컨셉의 뉴스레터 ‘뭐라노’를 선보였던 국제신문은 지난해 11월 타깃을 ‘부울경 거주 40대’로 재설정했다. 뉴스레터를 통해 국제신문이라는 브랜드가 가장 유효하게 작용하는 대상을 선정한 것이다. 중견 기자가 뉴스레터를 총괄하고, 이노성 디지털국장이 매일 쓰는 글로 무게감과 공신력을 더했다. 하송이 국제신문 디지털콘텐츠팀장은 “뭐라노의 차별점은 부울경 특화인데 이 지역에선 40대가 국제신문의 공신력을 가장 인정해주는 세대라고 판단했다. 타깃과 내용에 변화를 준 이후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다”며 “특히 국장의 글에 반응이 좋다. 뭐라노가 전하는 아이템이 좋아서 매일 아침 이메일을 열심히 열어보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해 10월 내놓은 뉴스레터 ‘CFO Insight(인사이트)’, ‘CHO 인사이트’, ‘CMO 인사이트’, ‘時(시)읽는 CEO’ 등은 주요 타깃을 기업의 최고책임자로 강조하는 전략을 폈다. 직책분야 동향·쟁점 분석, 관련 뉴스 브리핑, 전문가 기고 등으로 구성된 이들 콘텐츠는 포털에선 볼 수 없다. ‘고품격 맞춤형 뉴스레터’ 콘셉트에 따라 의도적으로 포털에 노출하지 않고 한경 자체 사이트와 이메일로만 유통되도록 해서다.
CFO 인사이트를 만드는 마켓인사이트부 소속 이상은 기자는 “일부러 한경닷컴에서만 볼 수 있게 했는데도 독자들의 반응이 강하게 온다는 게 긍정적이다. 실제 오픈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기존에는 독자들과 접점을 넓히기 위해 포털에 뿌려야 했는데 뉴스레터 경험으로 우리 채널을 유지하면서도 독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포털 밖에서도 브랜딩과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데 뉴스레터가 도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매주 두 차례 주요 기사·이슈 브리핑 ‘뉴잼’을 발송하는 한국일보도 콘텐츠를 전달하는 새로운 통로 마련과 자체 플랫폼 구축 가능성 측면에서 뉴스레터에 접근했다. 김혜영 한국일보 커넥트팀장은 “좋은 기사와 독자를 연결하는 단단한 매개체가 비어 있다고 본다. 포털이나 한국일보 사이트에서 미처 보지 못한 콘텐츠들을 잘 다듬어서 뉴스레터로 한 번 더 소개하고 배달하는 것”이라며 “포털은 저희의 의도가 100%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이고 종이신문은 덜 읽히는 환경에서 뉴스레터라는 일종의 시도, 하나의 도구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성언론사가 만든 뉴스레터의 지속가능성에 확답을 하긴 아직 이르다. 다만 뉴스레터에 도전한 언론사들과 담당 기자들은 그 과정에서 이미 크고 작은 성공을 경험하고 있다. 담당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가장 큰 성과는 ‘구독자와의 피드백’이다. 현재 국내에서 발행되는 뉴스레터 대부분은 ‘스티비’(stibee)라는 외부 플랫폼을 사용한다. 스티비로 보낸 뉴스레터에는 답장하기, 질문하기 버튼이 있어 구독자들이 쉽게 의견을 보낼 수 있다.
뉴스레터 ‘마부뉴스’를 제작하는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의 안혜민 기자는 “이전에도 독자를 머릿속에 그리곤 했지만 뉴스레터를 발송하면서부터는 일대일로 대한다는 느낌이 강해 독자의 상이 훨씬 더 명확해졌다”며 “그 자체가 콘텐츠 제작에 영향을 미친다. 매번 의견을 보내주는 독자들이 있고 저희도 뉴스레터에 대한 피드백은 즉각 반응해 해결한다”고 했다. 하송이 국제신문 팀장은 “보통 기사를 쓰고 나면 출입처에서 ‘잘 봤다’ 정도가 다인데 뉴스레터는 오픈율과 클릭률로 반응이 나타나고 독자 의견도 바로 들어온다”며 “16년차 기자인데도 독자들이 잘 봤다는 피드백을 주면 기분이 좋다.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7년차인 권지담 한겨레 기자가 밝힌 뉴스레터 전담의 긍정적 효과는 ‘뉴스를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권 기자는 “뉴스를 많이 보고 토론하고 선별하고 뉴스레터에 잘 싣는 과정 자체가 기사의 우선순위를 선별하는 훈련”이라고 했다.
이들의 노력 끝에 뉴스레터가 안착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려면 결국 오픈율, 즉 독자의 충성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오픈율이 50~60%에 달하는 빵 전문 뉴스레터 ‘빵슐랭가이드’ 발행자인 박현영 디지털데일리 기자는 ‘뉴스레터가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만들어 주는 것과 입소문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언급했다. 박 기자는 “이미 이용자가 많은 포털이나 유튜브 보다 누군가 이메일을 등록해주길 기다리는 뉴스레터는 구독자를 모으는 데 한계가 있다. 저도 사비 들여 홍보해봤지만 입소문을 탄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며 “구독 경로를 물으면 지인 추천이 50%나 된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이 레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2019년 국내 뉴스레터 붐을 일으킨 ‘어피티’의 박진영 대표도 ‘똑똑해진다는 생각’과 함께 ‘생활습관화’를 성공 키워드로 꼽았다. ‘경제에 관심 있는 2030’을 타깃팅하는 어피티는 매일 오전 6시쯤 발송된다. 요즘 이들 세대에서 유행 중인 ‘미라클모닝’(이른 아침 일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 시간대와 ‘똑똑해지는 경제 뉴스’가 맞아떨어지는 게 생활습관화를 만드는 하나의 사례다.
박 대표는 “뉴스레터는 개인화돼 있다. 내가 필요한 것만 구독하고 나만 본다. 출퇴근길에 유튜브 보고 게임하듯 뉴스레터가 구독자의 생활에 습관처럼 녹아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박 대표는 “타깃을 2050세대로 넓게 잡는 건 틀렸다고 생각한다”며 “뉴스레터 화자는 대중이 아니라 청자 한 명에게 다가가야 한다. 구독자들과 같은 세대로서 함께 나이 들고, 같은 경험을 나누며 친밀감을 높여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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