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의 추억들

[이슈 인사이드 | 경제] 김원장 KBS 방콕특파원

김원장 KBS 방콕특파원

▲김원장 KBS 방콕특파원

‘아파트’라고 이름만 붙이면 팔리는 시대다. 경기도 파주에서 충남 당진까지, 이른바 ‘악성 재고’까지 모두 팔린다. 그야말로 ‘줍줍’이다. 며칠 전 한 신문에 <미분양 걱정없다. 중견건설사 막바지 분양 총력>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진짜 미분양 걱정은 없을까? 이 열기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2000년 분양한 타워팰리스는 당초 의사 변호사 교수 등을 주로 입주시키고 싶었다. 분양도 개별 접촉으로 진행됐다(고 이건희 회장도 69층 펜트하우스를 계약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는 차갑게 식었고 결국 미분양됐다. 1/3 가량이 삼성임원들에게 억지 할당돼 정작 삼성임원 아파트가 됐다. 2007년 이후에는 정말 미분양이 넘쳐났다. 베란다 무료확장이나 분양가 할인은 기본이었다. 취득세도 내주고 입주 축하금까지 주는 아파트도 있었다. 그래도 미분양아파트는 2014년까지 쌓이고 또 쌓였다.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는 결국 캘리포니아에서 교민들을 초청해 떨이판매를 했다.


미분양도 종류가 많았다. ‘회사보유분 특별분양’은 그냥 미분양 됐다는 뜻이다. ‘동 호수 선택가능’은 로열층까지 미분양이 남았단 뜻이다. ‘즉시 입주 가능’은 준공 후에도 미분양 됐다는 뜻이다. 기억난다. ‘반포자이’도 ‘역삼동 아이파크’도 ‘잠실 푸르지오월드마크’도 ‘경희궁 자이’도 ‘판교더샵포레스트’도 다 미분양이었다. 우리가 잊고 있었을 뿐...(그때도 나는 부동산 출입기자였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9시 뉴스에서 ‘하우스푸어’ 리포트를 했다)


집은 짐이었다. 50%의 LTV를 안고 파주의 5억5000만원 H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은 집값이 30% 이상 떨어지자 사실상 자산이 1억도 남지 않았다. 그 무렵(2016년 4월) 영종도의 한 아파트에 30%나 할인된 가격으로 분양받은 입주자들이 이사를 오자, 기존 입주자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이사를 막았다. 아이를 등에 업고 눈물을 흘리면서 ‘왜 저들은 나보다 몇 억이나 싸게 이 집을 샀는지’ 건설사의 해명을 요구했다. 그 자리에서 한 50대 입주자가 분신했다.


그런데 몇 해 만에 부동산 경기는 살아났다. 불타올랐다. 2018년 다시 이들 지역에서 분양이 시작됐다. 그 지역 사람들이 그 ‘미분양의 기억’을 잊었을까? 걱정은 기우였다. 분양은 완판됐다. 한 분양대행사 직원의 말이 생생하다. “우산 하나씩만 들려줘도 다 팔려요!”


“서울 집값 오늘이 제일 싸다”라고 강의를 하는 분의 유튜브를 본적이 있다.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고, 내리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내릴 수가 없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집값이 오를 때 그 흥분이 뜨겁듯이, 집값이 내릴 때의 그 공포도 매우 차갑다(올 봄 보잉이나 포드가 정크등급으로 떨어질 때 당신은 왜 그 주식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집값이 오를 이유를 10가지로 설명하던 전문가들은, 그때는 집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10가지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우리는 잘 잊어버린다. 그리고 잘 휩쓸린다. 분명한 건 이것 뿐이다. 집값이 더 오를지,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시장이 차갑게 식어 모두 두려워할 때 집값은 치고 올랐다. 그리고 모두가 그 파티에 참여해 환호할 때 시장은 다시 차갑게 식었다. 늘 그랬다. 다만 우리가 잊어버렸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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