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지역사회 투자 원천 차단과 소비 활동 중단, 직원과 자녀들 주소지 이전.’ 포스코 노동자 직업병 실태와 지역 주민의 환경 피해, 포스코의 은폐 및 방임 정황을 다룬 포항MBC 특집 다큐멘터리 <그 쇳물 쓰지 마라>가 지난 10일 방영된 다음날 한국노총 포스코 노조가 낸 입장문의 일부다. 다큐를 제작한 장성훈 포항MBC 기자는 “노조 성명이 이 정도 내용일 줄 예상하지 못했지만, 노조 대응이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도 포항MBC에서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노조탄압 의혹 사건 관련 보도를 하자, 한국노총 포스코 노조가 포항MBC 사옥 앞에서 보도에 대해 항의하며 집회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포항MBC의 다큐 <그 쇳물 쓰지 마라>가 포항 지역사회, 언론계 등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0일 방송 이후 MBC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는 전국 방송 편성을 요청하는 게시글이 쇄도했고, 인스타그램 등 SNS 상에선 전국 노동자, 광주전남 대학생 등 1200여명이 참여한 ‘포항MBC 응원합니다’ 손 피켓 인증샷 올리기 챌린지가 펼쳐지기도 했다. 이런 호응에 힘입어 MBC는 <그 쇳물 쓰지 마라>를 지난 21일 ‘MBC 네트워크 특선’으로 전국 편성했다. 이 다큐는 포스코에 30~40년간 다니다 최근 퇴직한 노동자 4명이 폐암, 루게릭병, 백혈병 등에 걸린 사연을 담았다. 또 포스코 인근 주민들의 환경성 질환 이야기, 포스코의 직업병 은폐 정황, 지자체와 지역 언론의 카르텔까지 다뤘다.
포항MBC는 “수십년간 묻혀 온 철강 노동자들의 직업병 실체를 드러내고 누구든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노동자를 위한 방송”이라고 기획 취지를 밝혔다. 장성훈 기자는 “그동안 포스코 노동자 중 루게릭병이나 암에 걸린 분들이 많다는 소리는 있었는데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며 “제보자를 모아 보자며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현수막을 걸었고, 한 달 뒤 제보자 15명이 모였다. 다큐에선 직업병 피해자 4명을 중심으로 제철소의 어떤 공정에서 일했고, 그 공정에서 어떤 유해물질이 배출되며, 유해물질과 피해자들의 질환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전문가 인터뷰와 해외 연구 논문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스코 노조는 다큐 내용이 왜곡됐고, 악마의 편집이라고 주장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지역사회 투자에 계획하고 있는 사업 및 검토 중인 사업에 대해 전면 보류를 요청하고 지역사회 투자를 원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또 “봉사활동, 기부활동 등 일체의 사회공헌 활동과 직원들의 중식, 간담회 등 지역사회 소비활동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1일에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하청업체 직원의 산재 사망사고 현장 조사에 동행한 포항MBC 취재진의 취재를 물리력을 동원해 막기도 했다.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한국PD연합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시민단체들은 포항MBC 보도를 지지하며 지역사회를 볼모로 협박하는 포스코 노조의 행태를 비판했다. 민언련은 지난 21일 논평에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한 포항MBC의 보도를 두고 ‘객관적 사실보다는 왜곡, 악마의 편집’이라는 포스코 노조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지역사회와의 상생협력 사업을 중단하겠다며 협박성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부적절하다”고 했다. 한국PD연합회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앞장서서 옹호해야 할 노동조합이 사측의 대변인이 되어 양심을 저버린 행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장성훈 기자는 “포항에서 포스코는 비판하면 안 되는 절대적인 성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큐에 나오지만 경북도청, 경북도의회, 포항시청, 포항시의회 등 포스코를 관리·감독하는 모든 기관들은 포스코가 뭘 잘못했냐는 반응이다. 그건 언론도 마찬가지”라며 “한 매체의 지역본부가 포항MBC와 포스코가 마치 개인적인 문제로 서로 감정이 좋지 않아 이런 다큐를 만들었고, 포항시민이 피해 받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해 충격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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