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는 계속된다

[이슈 인사이드 | 문화] 이서현 동아일보 오피니언팀 기자

이서현 동아일보 오피니언팀 기자

▲이서현 동아일보 오피니언팀 기자

할머니는 겨우 13세에 아이를 가진 것을 알고 고향을 도망쳐 나왔다. 그렇게 태어난 엄마는 가정폭력을 예사로 보고 자랐다. 손꼽힐 만큼 공부도 잘했고 간호사 자격증까지 땄지만 아이 둘을 낳고도 제대로 가정을 꾸리지 못했고 결국은 마약에 손을 댔다. 엄마의 두 자녀 역시 수시로 바뀌는 ‘새아빠’와 엄마의 마약중독 후유증을 일상으로 겪었다. 가난이 덤이었으니 일가친척 중 대학 졸업장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자란 아이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와 다른 삶을 살 확률은 얼마나 될까.


‘힐빌리의 노래’는 오하이오 미들타운의 가난을 딛고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J.D. 밴스가 2016년 펴낸 에세이다. 출간 당시 미국에선 단숨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빌 게이츠는 북 리뷰를 통해 이 책을 필독서로 꼽았고,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배경으로 밴스의 고향을 포함한 이른바 ‘러스트 벨트’의 가난한 백인 노동자 계층이 오르내렸다. 무엇보다 가난하고 무지한 부모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리는, 그 희박한 확률을 뚫은 그의 이야기에 문화권을 넘어 많은 독자들이 공감했다.


이후 약 5년이 흘렀다. 트럼프가 떠난 자리 미국은 인종갈등과 계층갈등으로 새로운 분열의 시대를 맞았고 전 세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더욱 심각한 빈부격차의 시대를 앞두고 있다. 공교롭게도 ‘힐빌리의 노래’는 이런 시기에 넷플릭스 영화로 다시 태어나 24일 공개됐다.


책이 얻은 찬사와는 달리 이 영화에 대한 북미 시사회 반응은 혹평 일색이다. 배우들의 명연기에도 ‘얄팍한 거짓 공감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방향을 잘못 잡은 빈곤 포르노’라는 부정적 평가가 잇따랐다. 각색 과정에서 원작의 문제의식이나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희석됐다는 비판이 일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결국 의지할 곳은 가족’, ‘흙수저의 성공신화’ 같은 단순한 결론만으로는 현실세계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긴 어려울 것이다.


저자 밴스는 강의와 인터뷰를 통해 무기력과 비관주의로 가득한 그의 유년시절이 여전히 곳곳에서 진행 중이며 엄연한 현실이라고 경고해왔다. 그의 고향엔 지금도 아빠가 퇴근할 때 술에 취해 있을까봐 걱정하는 아이들, 엄마가 팔에 주사 바늘을 꽂고 쓰러지는 바람에 이유도 모른 채 저녁을 굶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휩쓴 자리 사회 빈부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런 사연을 취재한 기자들은 밴스의 이야기가 미국의 극단적인 사례라고만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가 없던 사이 라면을 끓여먹던 아이들이 화상을 입고 목숨을 잃었으며 부모의 스트레스는 가정폭력으로 아이들에게 전가됐다. 코로나19는 무기력과 냉소주의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밴스는 ‘사회적 자본’이 곁에 있었다고 말한다. ‘사회적 자본’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숙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 할머니, 규칙적인 생활을 익힌 해병대 생활, 조언을 아끼지 않은 교수님. 그 덕에 밴스는 희망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상처를 남길 것이다. 언론이 ‘사회적 자본’의 일부라면 기자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밴스 같은 아이들을 지탱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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