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의 편집자들

[이슈 인사이드 | 법조] 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지난해 10월, 권석천 당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검찰청의 편집자들”이라는 칼럼을 썼다.

“‘검찰 관계자’의 말이 결과적으로 옳을 수 있다. 수사 대상이 희대의 파렴치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개된 법정에서 진술과 증거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한쪽 당사자인 검찰의 ‘주장’ 내지 '‘의혹 제기’일 뿐이다. (중략) 당혹스럽게도, 뉴스를 편집할 힘을 검찰에 준 건 ‘유죄 추정’ ‘검찰 편향’의 늪에 빠진 언론 자신이다. 검찰 간부 입에서 기삿거리를 얻어내려는 출입기자들의 조바심이, 눈 뜨고 큰 기사를 놓칠지 모른다는 데스크의 불안감이 검찰 권력의 그림자를 키운다. 이런 구도 속에서 여론을 드리블하는 검사들의 현란한 플레이는 언제나 득점으로 연결된다.”

1년이 지난 지금, 법조 기사는 검찰청이 아니라 ‘구치소의 편집자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금융범죄 혐의로 징역 12년을 확정 선고 받은 이철 전 VIK 대표의 대리인의 폭로 에 따라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이 집중 보도됐다.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허위 증언을 강요당했다는 수감자들의 주장 또한 한동안 핵심 이슈였다. 최근에는 수백억 원대 횡령 혐의로 구속돼 있는 김봉현씨가 제기한 검사 접대 의혹이 주요 뉴스로 보도되고 있다.

그렇다면 구치소의 편집자의 폭로는 검찰청의 편집자들의 주장과 달리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권 전 위원의 표현을 차용하자면 “‘수감자’의 말이 결과적으로 옳을 수 있다. 검사가 희대의 파렴치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개된 법정에서 진술과 증거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한쪽 당사자인 수감자의 ‘주장’ 내지 ‘의혹 제기’일 뿐”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권 전 위원은 “취재 결과를 얼마나 제대로 검증했느냐”가 보도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청의 편집자들이 말이든, 구치소의 편집자들의 말이든, 언론이 자체적으로 정밀하게 검증하지 않은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보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런 기준이 현실적인지, 그리고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주요 사건의 핵심 피의자가 자신을 수사한 검사에게 접대를 했었다는 주장을 담은 입장문을 복수의 언론사에 잇달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보도한 행위를 부당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오히려 보도하지 않은 언론사는 폭로를 고의적으로 은폐했다는 의심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실제로 권 전 위원이 현재 보도를 책임지고 있는 방송사 역시 김봉현씨의 폭로가 나온 날 곧바로 메인뉴스에 기사 6개를 배치하며 김씨의 주장을 톱뉴스로 보도했다.

주요 사건 핵심 피의자의 폭로 내용을 보도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주요 사건 수사 관계자로부터 취재한 내용을 보도하는 행위 역시 부당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수감자들의 의도는 언제나 선량하고 검사들의 목적은 언제나 음험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세월호 사건이나 N번방 사건 등에 대한 검찰 수사 내용이 적지 않게 보도됐는데도 사람들이 이를 문제 삼지 않은 것도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구치소의 편집자들이 한 말이든, 검찰청의 편집자들의 주장이든, 뉴스 가치가 있는 사실관계에 대해 접근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된 인물이 구체적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 언론이 이를 보도하는 것 자체를 부당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꼼꼼한 검증을 통해 신빙성을 확인한 후 작성한 기사는 더욱 품질 높은 보도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언론사는 후속 보도 과정에서 의혹 제기의 신빙성을 계속해서 검증해나갈 필요가 있다. 언론사는 최초 보도 이후 여러 관련 취재원들 주장에 대한 교차 검증이나, 객관적 자료 분석을 통해 의혹 제기에 대해 검증해 나갈 수 있다. 의혹을 제기한 쪽의 논리나 주장이 진행되는 상황과 들어맞는지 판단해 볼 수도 있다. 취재원이 처한 상황이나, 취재원의 신분 역시 주장의 신빙성을 평가하는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의혹 제기의 신빙성 여부가 판단되는 것이 바람직한 보도의 흐름일 것이다. 이른바 ‘검언유착’ 폭로에 대한 첫 보도 이후 검찰 수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됐지만, 여러 매체가 관련 보도를 이어간 결과 검사와 기자의 부적절한 유착 의혹을 제기할 근거가 현재로서는 부족하다는 쪽으로 여론이 모아진 것처럼 말이다.

진짜 문제는 수감자들의 주장이든, 검사들의 발언이든, 어느 한 쪽의 주장을 취재된 것에 비해 지나치게 부풀리거나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행위다. 그간의 법조 기사 보도 관행과 관련해 반성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이는 누군가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라는 정파적 편향성이 보도에 압도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구치소의 편집자들’에게 기대서 수사지휘권을 잇달아 행사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정파적 행위로 보어야 할 것이다. 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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