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한미군의 제2단계 철수를 결정했다는 기사는 근거가 없다’, ‘정부가 내일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금지조치)을 해금하겠다고 결정한 일은 없다’.
1994년 일본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엔 이런 류의 팩스가 자주 날아들었다. 발신원은 한국 정부였다. 정부당국이 오보 또는 ‘(언론이) 앞서 나간 것으로 보는 기사’에 대한 공식 입장을 외신에도 전달한 것이었다.
당시 이를 직접 경험한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 키요타 하루히토 기자는 그해 기자협회보 기고문에 이렇게 썼다. “진실일지라도 정부가 부정하거나 또는 외교상의 이유 등으로 그럴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에 부임한 지 1년 반 동안의 체험 한도 내에서 보면 미디어 측의 단순한 과신 또는 과욕으로 인한 실수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일본 기자가 본 한국언론은 특히 ‘정정보도’에 인색했다. 키요타 기자는 “일본신문에도 잘못은 적지 않다. 그러나 한국신문의 경우 1면 톱 등 눈에 띄게 위급한 기사일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라며 “그 이후의 처리에는 유감스럽게도 더 많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신문은 기사 내용이 틀리면 즉각 정정기사를 내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치명적인 잘못일 경우 ‘사죄’까지도 표한다. 기자생활을 시작할 땐 ‘정정기사는 특종기사 여러 개와도 맞먹는다’는 교육을 철저히 받는다고 한다. 신문사 내에는 독자의 고충이나 지적을 접수받는 창구가 있어 사소한 잘못이라도 즉각 담당데스크나 기자에게 해명을 요구해온다고 했다.
키요타 기자는 따끔한 지적과 함께 한국언론을 향한 애정 어린 조언을 건넸다. “사소한 사실관계의 잘못일지라도, 쌓이면 논설을 포함한 신문 전체에 대한 독자의 신뢰마저 잃게 된다. 신문도 상품인 이상 하자가 발생한 상품을 떠넘긴 채 사후관리를 하지 않으면 치열한 판매경쟁에서 낙오된다. (…) 80년대 초부터는 한국언론의 피로 얼룩진 투쟁과 노력을 가까이서 보고 들어왔다. 그런 만큼 ‘독재’로부터 문자 그대로의 민주화, 자유언론의 시대를 맞이하려 하는 가운데 최근의 ‘상품관리’의 거칠음이 더욱 신경 쓰이는 지도 모르겠다. 한국신문이 현재의 과도기적 생활을 벗어나 질 높은 경쟁의 시대를 열어나갈 날이 머지않았음을 믿는다.”
김달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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