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 유세장에 모인 청중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이 구호는 교수형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인들을 목매달고 싶다는 극단적인 위협이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가짜뉴스”라거나 “민중의 적”이라고 거리낌없이 낙인 찍어온 트럼프 대통령 지지 진영 안에서는 이런 혐오발언이 우스갯소리처럼 소비된다.
미국의 상황이 유별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언론인들에 대한 온라인 공간에서의 괴롭힘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여러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기자의 젠더, 인종, 성적 지향, 종교 등을 공격의 좌표로 삼는 일들은 흔하다.
한국은 어떤가? 지난 7월12일 한국여기자협회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피해자 보호가 우선’이라는 취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내용을 보도한 한 일간지 홈페이지의 독자 댓글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자협회는 뭐야?ㅋㅋㅋ 기더기들은 수컷이건 암컷이건 박멸해야 한다. 사회의 해충이다. 푸하하하”
기자들을 향한 이런 섬뜩한 조롱들은 이제 전혀 낯설지 않다. 인터넷 공간에서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언론을 비판할 권리가 있는 상황에서 이는 불가피한 일일까? 더구나 한국의 언론은 매년 주요 선진국들 중에 ‘신뢰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으니 이런 비난은 자업자득인가?
최근 실비오 웨이스보드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온라인 공간에 만연한 언론인들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공격을 그저 “쓰레기같은 말” “표현의 자유”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군중 검열(mob censorship)’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폭압적인 정치권력이 법과 행정력을 동원하거나 막강한 금권이 광고로 지면을 사거나 갱단같은 조직이 탐사보도를 하는 기자들을 암살하겠다고 협박하는 것만이 검열이 아니라는 얘기다. “언론을 입 다물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의 ‘군중 검열’은 과거의 검열과 속성이 같다. 다른 점이라면, 이 검열은 아래로부터 위로, 언론을 길들이려는 목적을 가진 비 중앙집권적인 자경단 성격의 행위라는 점이다.
언론을 악마화하는 ‘군중 검열’은 언론 비평과 결이 다르다. 비평이란 상대를 나와 같은 존재로 대우하는 시민성, 비판적 추론, 더 나은 언론과 사회의 지향이라는 태도와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군중 검열’과 언론 비평은 자주 혼동된다. 깨어있는 시민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조차, 언론을 악마화하는 감정적인 단어들을 쏟아내는 것을 언론 비평으로 여긴다.
이제 이런 문제를 기자 개인이 감당해야 할 속앓이로 둘 것이 아니다. 소속 언론사가 나서서 트라우마를 겪는 기자들에 대한 심리적 지원도 하고, 법무 지원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영을 막론하고 ‘군중 검열’이라는 폭력을 동원해 언론을 침묵하게 하려는 행위를, 양식 있는 시민들이 사회적 해악으로 인지해야 한다. 여론을 이끄는 정치인 등 이른바 인플루언서들이 당면한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군중 검열’에 눈감거나 이를 부추기는 것은 민주주의 공론장을 무너뜨리는 행위로 비판받아야 한다.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