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언론사에 입사하면 3~6개월간 수습생활을 한다. 수습기간 대부분은 현장·실습 중심의 도제식 교육으로 이뤄진다. 신입 기자들은 지시와 보고, 데스킹 과정을 거치면서 선배의 경험을 답습하고 이를 취재·보도의 가치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이후 1~3년마다 부서를 옮겨 다니며 연차를 쌓는 동안 회사 차원의 체계적인 재교육을 기대하긴 힘들다. 대다수 언론사가 기자에게 제공하는 장기간 교육은 사실상 수습교육이 유일하다. 때문에 기본기를 쌓는 입사 초기에 어떤 선임을 만나고 어떤 교육을 받느냐는 기자 개인의 성장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일간지에서 근무하는 13년차 A 기자는 “언론사는 시스템이 아닌 운에 따라 구성원의 성장이 결정되는 구조”라며 “후배교육을 업무의 일환이나 의무로 생각하는 사수를 만나면 상대적으로 좋은 교육을 받지만 반대의 경우 훈련에서 방치돼 자생하거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재교육 강화는 기자사회의 오랜 숙제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기자협회보가 주요 종합일간지와 지상파 방송사의 교육 프로그램 현황을 살핀 결과 수습기자 교육 외에 기자직무 관련 재교육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언론사는 드물었다. 이 가운데서 별도의 인재개발원을 둔 KBS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자체 제작한 온라인 강의를 비롯해 최근엔 ‘재난방송’, ‘디지털과 데이터 관리’, ‘인터뷰 실무’, ‘재난지역 취재 행동 요령’, ‘영상촬영 실습’, ‘현안 관련 전문가 특강’ 등을 진행해왔다.
KBS 인재개발원 관계자는 “기자를 포함한 여러 직군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며 “2017년까진 3년차 기자 합숙교육 과정도 운영했지만 현재는 점심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취재부서가 기획한 교육 프로그램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자체 교육 프로그램 운영이 어려운 상당수 언론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등 외부 기관에 의존하고 있다. 한 종합일간지 편집국 간부 B 기자는 “수습교육을 제외하면 편집국에서 하는 기자 교육은 없다”면서 “대신 외부 교육 참여를 독려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부 기관 교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언론진흥재단 강의는 주로 평일 근무시간대에 개설돼 기자들의 참여가 쉽지 않다. 언론재단은 이런 제약을 완화하기 위해 최근 실시간 화상 강의, 온라인 영상 교육 콘텐츠를 활성화하고 있다.
현재 여러 언론사가 시행 중인 재교육 제도에는 승진자 리더십 교육, 사내 동아리·학습모임 지원, 어학 교육비 지원, 온라인 교육업체 제휴 콘텐츠 제공 등이 있다. 그러나 실제 기자들이 바라는 재교육과는 차이가 있다. 지난해 언론재단이 발행한 <2019 한국의 언론인>에 따르면 기자들은 언론인 재교육에 가장 필요한 프로그램(복수응답)으로 ‘취재보도 관련 전문지식’(53.9%)을 꼽았다. 다음으로 ‘탐사보도(심층취재) 기법’(47.6%)과 ‘취재보도 관련 윤리 및 법제’(38.7%)를 선호했다. 기자 업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재교육을 원하는 것이다. 한 언론사 차장직급 C 기자는 “회사가 제휴를 맺어 제공하는 외부 교육업체 강의는 수백 개인데 기자가 실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건 없다”면서 “결과적으로 아무도 안 듣는 생색내기용 재교육이 됐다”고 꼬집었다. 재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C 기자는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니 실무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선배들을 보면 해외연수 외에 교육을 권장하는 문화도 아니었다”며 “요즘에서야 코딩, 정보 수집·분석, 탐사보도 같은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일간지 노조위원장 D 기자는 언론사가 구성원 재교육에 소극적인 이유로 인사운영의 전문성 결여와 경직된 조직 문화를 언급했다. D 기자는 “인재를 뽑아 육성하고 적절하게 배치하는 HR관점에서 보면 일반기업과 비교해 언론사의 전문성은 크게 떨어진다. 젊은 기자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고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관심이 많은데 윗분들은 후배들이 뭘 배우러 다닌다고 하면 오히려 불쾌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며 “회사에서 가르쳐주는 것은 고사하고 대학원에 가서 스스로 배우겠다는 후배에게 ‘그 시간에 기사나 한 줄 더 쓰라’는 반응이 여전히 많다”고 전했다.
지난 몇 년 새 사비로 해외 대학원을 가려던 젊은 기자들이 무급 휴직을 얻지 못해 결국 퇴사한 일도 있었다. 이 중 한 명은 유학을 다녀와 해당 언론사에 경력직으로 재입사하기도 했다. 회사를 설득해 어렵사리 무급 휴직을 승인받아 해외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복귀한 사례도 여럿이다.
허리연차인 D 기자는 “과거엔 출입처에 얼굴도장 자주 찍고 취재원 말만 받아써도 적당히 기자생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기자가 공부하지 않고 글만 써서는 취재원과 독자에게 무시당하는 시대”라며 “언론은 기자의 역량과 지식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업종이기 때문에 언론사는 기자 교육을 장기적인 투자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학원 진학을 비롯해 기자들이 학습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폭넓게 지원하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기자 교육이 날로 중요해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사회 변화에 따라 선배들의 경험, 즉 취재보도 관행이 더는 유효하지 않아서다. 한국 언론 신뢰도가 뒷걸음질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과거와 달리 취재과정에 의문을 품고, 기사의 의도를 의심한다. 기자사회가 오래 묵혀온 취재보도 방식을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10가지 팩트 가운데 하나만 틀려도 보도 전체가 오보로 몰리는 세상이 됐다. 이 함정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교육해야 한다”며 “팩트를 다루는 방법부터 어느 정도 취재하고 기사화할지, 판단의 임계점 높이도 옛날과 달라야 한다. 문제가 되는 관행들을 포괄적이고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심 교수는 이 과정에서 윤리 교육을 강조했다. 심 교수는 “취재보도의 모든 매커니즘은 윤리와 연관돼 있다”며 “기사를 기술적으로 빨리, 잘 쓰는 것을 넘어 ‘문제가 되지 않게’ 쓰는 것이 윤리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기자들의 윤리 교육 수요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의 언론인> 2005년, 2007년, 2009년, 2013년판을 보면 ‘재교육 요구 과목’으로 ‘언론법제·언론인 책임과 윤리’를 택한 응답자는 각각 22.0%-20.3%-22.7%-19.4%이었는데, 2017년 조사에선 15%p가량 증가한 33.9%를 기록했다. 2019년에는 이보다 5%p 더 상승했다.
올해는 실질적인 윤리 교육 강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언론재단은 언론 윤리 교육 과정 체계화를 목표로 내외부 인사들로 구성한 ‘저널리즘 윤리 교육 포럼’을 출범하고 지난 17일 첫 회의를 열었다. 한겨레신문은 숙명여대와 함께 ‘취재보도 윤리·저널리즘 원칙 교육 커리큘럼’ 개발을 준비 중이다. 올해 연말까지 프로그램 개발을 마무리하고 내년 초 자사 5~10년차 기자들을 대상으로 회사 차원의 공식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봉현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은 “사실 그동안 기자들은 저널리즘 원칙과 윤리에 대한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고 도제식으로 어떻게 하면 특종 할 수 있고 곤조 있는 기자가 될 수 있는지 혹독하게 가르침 받아왔다”며 “윤리는 선택의 문제여서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내면화해야 한다. 구체적인 사례와 토론 중심의 교육을 통해 딜레마 상황에서 윤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JTBC 주니어 기자들은 자체적으로 스터디를 꾸려 저널리즘을 공부하면서 나름의 ‘교과서’를 만들어갔다. 지난해 입사 4년차이던 동기 5명(서효정·송승환·이태윤·정해성·최수연 기자)은 올해 4월까지 공부모임과 함께 팟캐스트 <주니어 기자 저널리즘 스터디>(주저스)도 운영했다. 스터디를 압축한 팟캐스트 방송에는 저널리즘 기본 원칙부터 데스킹, 출입처, 취재원과 정보원, 의견 저널리즘, 뉴스 생산 관행, 탐사보도, 자살보도, 재난보도, 성폭력범죄 취재윤리 등 주니어 기자들의 토론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주저스를 기획한 송승환 JTBC 기자는 “저널리즘을 현장에서 도제식으로 익히다 보니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고 대학생에서 기자가 돼가는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도 기록하고 싶었다”면서 “팟캐스트를 함께 시작한 계기는 시청자에겐 마치 블랙박스 같은 뉴스 제작과정을 오픈해 뉴스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송 기자는 1년여간 발제와 토론으로 저널리즘을 공부하면서 나름의 원칙이 생겼다고 했다. 송 기자는 “큰 차원의 소명의식이나 신념도 중요하겠지만 실제론 인용 한 줄을 정확하고 투명하게 했는지, 제목을 무리해서 뽑진 않았는지처럼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디테일’이 있어야 현장에서 저널리즘과 윤리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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