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 '박재동 화백 미투 반박' 기사를 승인 없이 작성‧출고해 논란을 부른 자사 기자를 징계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7일 경향신문은 해당 기사를 작성하고 온라인에 전송하는 과정에서 보고와 데스킹을 거치지 않은 강진구 기자에게 12일 인사위 개최를 통보했다. 인사위는 강 기자가 지난달 29일 자체적으로 출고한 온라인 기사 <[단독]박재동 화백 '치마 밑으로 손 넣은 사람에 또 주례 부탁하나' 미투 반박>이 △회사의 명예 또는 신용 손상 △신문제작 및 편집 등에 대한 회사 방침 침해 △회사 승인 없이 회사의 직무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외부 출연 △정당한 회사명령 불복과 신의 협력 규정을 위반했는지 등을 판단해 징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강 기자가 작성한 이 기사는 2018년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박재동 화백이 '가짜 미투' 논란에 휩싸였다는 내용을 담았다. 강 기자는 성평등시민연대와 만화계성폭력진상규명위원회의 보도자료를 인용해 "박 화백을 만나 주례를 부탁하는 과정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박 화백과 택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재차 주례를 맡아달라고 부탁한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면서 피해자의 진술에 의문을 제기했다.
강 기자는 '가짜 미투' 의혹을 뒷받침할 근거로 피해자와 동료가 나눈 미투 관련 카톡 대화, 이 사건을 최초 보도한 SBS와 박 화백 간 정정보도 소송 과정에서 제출된 녹취록을 제시했다. 모두 두 단체가 낸 보도자료에 실린 내용이다.
강 기자는 피해자와의 일문일답에선 피해자가 진술한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그런 피해를 당하고도 다시 주례를 부탁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묻기도 했다. 피해자는 해당 기사에서 "이미 1심 재판결과(박 화백 패소) 저의 성추행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결론이 내려졌다"며 "진실을 외면하고 피해자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는 2차 가해에 이제 염증이 나고 한심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는 지난달 29일 오전 6시 경향신문 온라인에 노출됐지만 4시간여만에 삭제됐다. 강 기자가 데스크(편집국장) 승인 없이 자체적으로 출고한 기사를 뒤늦게 본 경향신문 구성원들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문제를 제기했고, 편집국 국장단이 이를 받아들여 기사를 내렸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강 기자는 자신의 SNS와 외부 매체를 통해 기사 삭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튿날 경향신문 노조 산하 독립언론실천위원회(독실위)는 긴급 회의를 소집해 이 사태에 대해 논의했다. 그 결과 해당 기사와 기자가 △자사 성범죄보도준칙‧구성원이 합의한 보도 윤리 위반 △독단적인 판단과 기사 송출 △기사작성에 대한 내부 비판과 시급한 조치를 비난하며 회사의 신뢰와 명예 실추시켰다고 판단하고, 강 기자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노조 집행부도 이달 8일 "독실위의 논의‧결정 사항을 최소한 존중하고 최대한 뜻을 같이 한다"는 입장을 냈다.
기사 삭제 사건 이후 2주가 흘렀지만 징계를 요구한 구성원들과 강 기자 사이의 견해 차이는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인사위 판단에 따른 후폭풍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강 기자는 "저는 어느 부서에도 속하지 않은 전문기자여서 데스크가 편집국장밖에 없다. 그동안 온라인 퍼스트 원칙 속에서 온라인용 기사는 데스킹 없이 선출고해왔다"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상황인데도 ‘피해자중심주의’만으로 보도하라는 것은 기자의 양심과 언론의 자유에 반하는 일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징계위에 오른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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