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필요하시면, 중앙은행이 찍어드립니다

[이슈 인사이드 | 경제] 김원장 KBS 방콕특파원

김원장 KBS 방콕특파원

▲김원장 KBS 방콕특파원

나라곳간, 재정은 늘 부족합니다. 세금을 더 걷기도 어렵습니다. 정부지갑은 늘 빈털터리입니다. 만약 돈이 필요한데 중앙은행이 마음껏 찍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경제는 조폐창 윤전기를 많이 돌릴수록 좋아지겠죠? 그런데 그런 시절이 왔습니다. 혹시 돈 필요하세요? 중앙은행이 찍어드립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어려움에 빠진 기업들의 회사채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위기의 기업들에 직접 돈을 꿔주는 겁니다. 벌써 4억달러어치나 샀습니다. 중앙은행이 동네 새마을 금고도 아니고…. 지난 양적완화(2008~2014)때 4500조원 정도를 풀어낼 때도 연준이 민간 기업의 채권을 인수한 적은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위기 때마다 중앙은행은 으레 금리를 낮췄습니다. 시중에 돈이 더 돌게 만듭니다. 그렇게 곶감 빼먹듯 금리를 낮추다, 더 이상 낮출 금리가 없습니다. ZERO 금리 시대. 연준은 하다하다 2022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백화점이 밥먹듯이 세일을 하다, ‘이번 세일 앞으로 2년간 계속할게요’ 라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연준은 또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지난 석 달 만에 우리돈 대략 3000조원 정도(M2기준)를 더 풀었습니다.


로마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왕이 화폐를 초과발행하면 늘 돈의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연준이 이렇게 돈을 풀어도 좀처럼 인플레이션이 없습니다.(당백전을 마구 발행했다가 혼쭐이 난 대원군은 얼마나 억울한가)


저금리로 돈을 빌린 넉넉한 기업들은 공장을 짓기보다 자사주를 사서 주가를 올리거나, 다른 자산투자를 합니다. 그러니 툭하면 증시나 부동산시장만 뜨거워집니다. 돈이 풀리면 근로자의 임금도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실업률이 높아서 임금 협상력이 약하고 그래서 임금도 잘 안 오릅니다. 돈을 풀어도 돈이 잘 돌지않고 인플레가 안생깁니다. 그래서 또 돈을 풉니다. 고전적인 화폐의 유통 체인이 망가집니다.


(물론 윤전기를 돌려 실제 달러를 찍어내는 것은 아니다. 연준이 채권을 매입하면 시중 은행 장부에 수치만 바뀐다. 연준이 채권을 자꾸 사들이면 채권 값이 올라가고 채권 수익률이 떨어진다. 은행과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내려간다. 기업들이 돈을 구하기가 쉬워진다. 사들인 채권이 연준의 곳간에 차곡차곡 쌓이지만 이 역시 모니터상의 숫자일 뿐이다.)


중앙은행은 원래 ‘최후의 대부자(The lender of last resort)’입니다. 그런데 위기 시작부터 마운드에 오릅니다. ‘최초의 대부자’가 돼갑니다. 자꾸 돈을 찍어냅니다. ‘그깟’ 세금 거둬서 늘 재정이 부족한 재무부는 이제 중앙은행만 바라봅니다.


생각해볼 문제 몇 개. 선출된 권력도 아닌데, 연준(FED)이 위기 기업을 선별할 권한을 누가 줬을까? 그 많은 채권 이자는 어디로 갈까? 그 아픈 기업들이 만기가 돌아오면 빚을 갚을 수는 있을까? 위기의 기업들이 살아남으면 시장경제에 득이 될까?


하나만 더. 그 돈이 돌고 돌아 마지막엔 어디로 가는지도 좀 지켜봐야겠습니다. 늘 그랬듯이 우리 지갑에는 잠깐 들어왔다 나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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