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정쟁 대리전 양상

같은 사실 입장 따라 "키우고 줄이고"

‘4억 달러 대북 지원설’과 이정연씨의 병역비리를 고발한 ‘김대업씨의 테이프 조작설’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연일 정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언론 공방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언론이 정쟁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4억 달러 대북지원설’의 경우 현대상선 대출과정에서의 의혹은 불거지고 있으나 정작 정부가 개입돼 이 돈을 북한에 송금했는지 여부와 관련해서는 ‘설’만 무성한 상황이다. 현재로선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이 ‘현대상선이 사용한 돈이 아니기 때문에 갚을 수 없으며 정부에서 대신 갚아주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의 국정감사 발언이 ‘대북지원설’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근거인 셈이다. 동아, 조선, 중앙 등은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여전히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로 현대를 통해 북한에 제공했다”는데 무게를 두고 보도하고 있는 반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 등 일부 언론은 ‘계열사 편법지원 가능성’, ‘3000억 대주주 유용 가능성’을 1면 머릿기사 등으로 부각시켜 보도하는 등 엇갈린 태도를 보였다. 이는 “당시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던 현대 계열사에 대한 지원금”이라는 민주당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북지원설’의 결정적 증언을 한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에 대한 평가도 언론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는 “신앙심 깊고 소신 강한 경제통”이라는 평가를 한 반면 한겨레는 “산은 총재를 이례적으로 8개월만에 그만두고 ‘홀대’를 받아온 섭섭함이 컸을 것”이라며 증언의 순수성에 의심을 제기했다.

‘김대업씨의 테이프 조작설’과 관련해서는 검찰이 테이프가 조작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는 주장과 아직 수사가 진행중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동아 조선 중앙은 김씨가 당초 원본이라고 제시한 테이프가 2001년도에 제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어졌음을 부각시키면서 “테이프가 조작됐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또 검찰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수사가 사실상 종결됐으며 김씨를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반면 한겨레 경향 대한매일 등은 검찰 수사가 아직 진행중이며 검찰이 테이프가 조작됐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라고 엇갈린 보도를 했다. 김씨의 말 바꾸기=테이프 조작=이회창 후보 아들병역의혹 해소라는 보도는 ‘논리적 비약’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선 검찰 내부에서도 정치 성향에 따라 수사방향을 놓고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편 한국일보는 4일자 “헷갈리는 병풍…진실은 뭔가”에서 “진실은 하나인데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사실관계에 대한 보도가 제각각”이라며 “일부 언론이 설익은 설을 대서특필하면서 검찰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박미영 기자 [email protected] 박미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