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지역 유일한 지상파 라디오 방송사인 경기방송이 끝내 폐업을 강행했다. 개국 22년 3개월 만이다. 경기방송은 지난 16일 주주총회를 열고 지난달 20일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한 폐업안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전체 주식 51만9900주 가운데 83.12%인 43만2150주가 참석했고, 이 중 99.97%인 43만2050주가 찬성표를 던졌다. 경기방송은 정관에서 부동산 임대업만 남기고 방송사업과 광고사업 등 모든 목적 사업을 삭제했다. 방송사업자가 하루아침에 부동산 임대업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경기방송은 경기도 수원 영통구에 본관 건물과 신관, 주차타워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곳엔 동수원등기소와 여러 상업시설 등이 입주해 있다.
남은 절차는 폐업 신고뿐이다. 방송법에 따르면 지상파방송사업자가 폐업하고자 할 때는 폐업신고서에 방송사업 허가증을 첨부해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그 외에는 폐업과 관련한 어떤 규정도 없다. 방통위가 폐업 신고를 거부하거나 보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고, 폐업신고서 제출 이후의 후속 절차 또한 명확히 정해진 것이 없다. 방송사업자가 스스로 폐업을 결정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인 만큼 방통위에도 이에 관한 실행 파일이 전무한 탓이다.
그렇다면 사상 초유의 폐업 결정을 할 만큼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을까. 경기방송이 주장하는 근거는 이렇다. ‘경기도의회와 방통위의 언론탄압, 노조의 경영간섭’. 주주들도 16일 입장문에서 “지속된 언론탄압과 방송장악 세력에 맞서지 못하고 폐업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도의회 등의 예산 삭감으로 “기하급수적인 매출의 급감이 뒤따랐”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약 20%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여전히 흑자였다. 경기방송은 그동안 지방정부의 협찬수익 등에 힘입어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오히려 이런 지자체 협찬수익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재허가 심사 등에서 문제로 지적돼왔다. 그런데 이 같은 경영상의 문제를 개선하라며 방통위가 조건부 재허가를 결정하자 아예 방송을 접기로 한 것이다. 특히 그동안 ‘실세’로 군림해온 현준호 전 전무이사가 방통위 권고에 따라 사임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현 전 전무이사는 사임 이후에도 경기방송 이사회와 경영 전반에 영향을 미쳐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16일 주총에도 참석했다.
경영진의 일방적인 폐업 결정으로 일터를 잃게 된 구성원들이 성토보다 사죄를 먼저 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장주영 전국언론노조 경기방송지부장은 “방통위 재허가 심사를 4번이나 받는 10년이란 시간 동안 같은 문제가 지적됐음에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우리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방송사주는 방송법을 지켜야 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고 탄식했다.
방송법은 방송의 공적 책임과 방송사업자가 이를 준수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경기방송지부는 폐업 결의에도 불구하고 ‘무임금’으로 방송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주주총회의 이번 결정을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로 삼겠다”면서 “방송윤리가 왜 중요한지, 방송법이 공중파 존립의 근거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방송을 통해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경기방송은 방송 장비를 당장 매각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자 선정을 위해 협조하겠다고 밝혔지만, 노조는 사업장이 폐쇄될 가능성까지 고려해 외부에서 방송을 제작, 송출하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16일 현재 경기방송 구성원 32명 중 19명이 노조원이며 기자와 PD, 기술 등 방송을 위한 필수인력이 참여하고 있다. 방통위 역시 방송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기방송 노사와 협의하는 한편, 주파수(FM 99.9MHz)에 대한 새 사업자 선정 공모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전국언론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방통위는 지역민의 시청권과 구성원의 고용 안정을 위한 대응원칙에 대해서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고은 기자 [email protected]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