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받는 주52시간, 삶이 나아진 걸까 아닐까

[주52시간 관리 시스템 등장… 각 사, 연장 근로 인정범위 혼선]
한겨레·YTN '시프티' 도입… 입력시 위치 요구, 정보유출 우려
서울·KBS·연합은 자체 개발 프로그램으로 실제 근무시간 파악

기자들 추가근무마다 기록 만들고 매번 승인받아야… "번거롭다"

한겨레 취재부서 소속 A 기자는 매일 오전 취재장소에 도착한 뒤 모바일 근무 관리 앱에 접속해 ‘출근하기’를 터치한다. 이 버튼은 기자가 사전에 근무일정을 등록하고 팀장의 승인을 받아야만 누를 수 있다. 아침 보고를 올리면 간접적으로 출근이 확인되던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한겨레 노사가 ‘선택근로제 기반 주 52시간 근무안’에 합의하고 그 다음달 출퇴근·근무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생긴 변화다.


한겨레가 채택한 선택근로제는 노동자 개인이 업무 시작과 종료 시각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어 정확한 노동 시간 측정이 중요하다. 당시 한겨레 노조는 노사 합의 소식과 출퇴근 관리 시스템 도입 결정을 전하는 노보에서 “주52시간제는 불필요한 노동을 줄이고 발생한 초과 근로에는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다는 제도”라며 “그러기 위해선 노동 시간을 정확히 계측해야 한다…직원들은 시스템에 출퇴근과 점심 휴게시간을 기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52시간 시대가 열리면서 언론계에도 출퇴근을 기록하고 근무 시간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겨레는 외부업체 ‘시프티’가 개발한 근무 관리 프로그램을 지난 1일부터 사용하고 있다. 앞서 YTN도 한겨레와 같은 시스템을 지난해 10월 도입해 운용 중이다. 다음 달 유연근로제 시행을 앞둔 동아일보도 시프티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 이밖에 서울신문, KBS, 연합뉴스 등은 자체 프로그램으로 구성원들의 실질적인 근무 시간을 파악한다.


연합뉴스 관계자는 “근무 관리 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2018년 7월 주52시간 첫 도입 때부터 적용하고 있다”며 “올해 들어 탄력근무 산정 기준을 기존 2주에서 4주로 변경하면서 프로그램도 업그레이드했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누적 근무 시간을 더욱 효과적으로 알 수 있도록 막대그래프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근무 관리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실제 몇 시간 근무했는지, 휴가는 며칠 남았는지 등을 한 눈에 확인한다. 부서장으로선 기자 개인별, 부서별 근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KBS의 한 기자는 “아침부터 밤까지 뻗치기 해야 할 현장이 있다면 예전엔 담당기자 한 명이 자릴 지켰겠지만 지금은 근무시간 이후엔 야근자가 이어 맡는다”며 “근무 시간이 프로그램으로 철저하게 산정되니까 더 엄격하게 지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낯선 시스템 하에서 기자들이 불편을 겪거나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도 포착된다. 특히 언론사 가운데 외부 업체인 시프티를 가장 먼저 도입한 YTN과 한겨레에선 출퇴근 인증 시 위치정보를 요구하는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도 나왔었다. 기자들의 위치정보가 업체 서버에 저장돼 유출되거나 악용될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이에 대해 시프티 관계자는 “위치 정보는 인증에만 사용하고 곧바로 파기한다”면서 “기업의 요청에 따라 위치 인증이나 출퇴근 기능을 아예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연장 근로를 어디까지 인정할지를 두고도 혼선이 있다. 한겨레의 한 기자는 “노사가 정한 가이드라인에는 취재원 만찬의 일부분을 업무로 인정해주기로 했는데 막상 근로 시간으로 입력하려니 민망하더라. 점심은 공식적으론 휴게시간이지만 그때 취재 약속이 있어도 업무로 기록하지 않았다”며 “불가피하게 추가 근무를 해야 할 때도 먼저 근무 일정을 생성하고 팀장의 승인을 받아야 해서 번거롭다”고 말했다.


YTN 기자들의 경우 시프티에 근무시간을 입력하고 난 뒤 발생한 초과근무는 별도의 수당기록시스템에 또다시 등록해야 한다. YTN은 이런 불편함을 줄이고자 내부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올 상반기 중 오픈할 예정이다. 동아일보도 장기적으로 자체 개발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무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 언론사들은 선행 사례를 지켜보며 향후 도입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마다 업무형태와 임금체계가 다른 상황에서 이 시스템 도입이 능사인 것은 아니다.


한 종합일간지 노조위원장은 “52시간제 도입 이후 근무시간을 정해놓긴 했지만 여전히 더 일찍 출근하거나 늦게 퇴근하는 기자들이 많다”며 “이를 정확히 측정해야 실제 52시간을 넘겼는지 확인할 수 있고 수당 문제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고 본다. 시스템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간지 노조위원장은 “근로시간을 철저하게 계산하면 오히려 임금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어 당장 관련 시스템 도입을 고려하고 있진 않다”면서도 “일부 부서에서 근로시간 측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 내부적으로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달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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