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 걸쳐진 자켓과 책상 위 흐트러진 기자수첩과 볼펜, 안경집. 발인날이었던 지난 7일, 김선흥<사진> 전라일보 기자의 자리는 생전 그대로였다. 방금까지 일한 듯 신문과 자료, 메모 등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저 채 뜯지 못한 간행물과 10월에 머무른 달력만이 그가 다시는 이 자리에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암시했다.
“선흥형을 떠나보내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선흥형 자리가 눈에 밟히네요. 초라한 자리에는 선흥형 대신 끝내지 못한 업무와 넘기지 못한 달력이 무겁게 앉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전라일보 한 기자는 그렇게 동료를 떠나보낸 슬픔을 전했다.
지난 5일 암 투병 끝에 김선흥 기자가 세상을 떠났다. 김 기자는 지난 8월 말 심한 목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으나 간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이후 암 전이를 막기 위해 지난달 중순 수술을 받는 등 투병했으나 끝내 생을 마감했다. 동료들은 김 기자가 통증이 심한 중에도 기사를 직접 챙기는 등 언론인의 사명을 다했다고 전했다. 전라일보도 “회사와 기자, 가족을 사랑했던 동료였다”고 그를 추모했다.
깊은 슬픔 속에서도 한편에선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지역 언론의 열악한 환경이 그를 갉아먹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라일보 한 기자는 “원래 경제부 인력이 3명이었는데 전체적으로 경영 압박이 심해지면서 최근엔 경제부장인 김선흥 기자를 포함해 기자 2명이 출입처 80곳을 커버하고 있었다”며 “기자 한 명이 떠맡는 업무량이 많아진 것은 물론 출입처 관리 때문에 주중 4~5일은 술자리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업무가 많다 보니 김 기자가 휴가나 연차도 제대로 못 썼다”고 말했다.
다른 전라일보 기자도 “세 사람이 하던 일을 두 사람이 하니 당연히 일이 많은 데다 이런 저런 기획들이 쏟아져 내려와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급여나 여건이 나아지지 않으니 인력 충원도 요원한 일이었다. 점점 열악해지는 지역언론 현실이 현장 기자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고 했다.
강아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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