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출신들의 정계진출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으나 언론자유 신장을 위한 이들의 역할은 미미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당리당략에 매몰돼 소신있는 활동을 펼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언론관련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보다는 오히려 언론을 옥죄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최근 파문을 일으켰던 한나라당의 ‘신 보도지침’ 사건도 당내 강경파로 알려진 언론인 출신의 고흥길 의원과 이원창 의원이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고 의원과 경향신문 논설위원 출신인 이 의원은 각각 지난 16대 총선 때 국회에 등원, 이 회창 후보의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언론담당으로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평이다.
한나라당 문화관광위 간사이자 최근 방송사와의 전면전을 주도하고 있는 한나라당 공정방송특위의 간사이기도 한 고 의원은 이회창 후보가 97년 대선에 출마할 당시 중앙일보 편집국장에서 이 후보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길 만큼 ‘창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최측근에 속한다. 고 의원은 MBC 국감과 관련 대책회의에서 “감사원법은 꼭 통과시키려고 내놓은 것이 아니고 압박용이다. 국정감사를 안 받게 할 수도 있다는 사인을 주었는데도 보도가 나아지지 않아서 법안을 제출한 것”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MBC 국감을 유리한 보도를 위한 압박용으로 들고 나왔다는 지적을 샀다.
역시 공정방송특위 위원인 이원창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김중배 MBC 사장이 임원회의에서 ‘대선까지 이회창 후보의 병풍문제를 크게 보도하라’고 지시했다”며 기초적인 사실확인도 없이 김 사장의 발언 내용을 공개석상에서 발표해 파문을 일으키는 등 언론에 대한 강경 대응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언론자유를 침해했다는 지적을 사고 있는 한나라당 공정방송특위 위원 10명 가운데 현경대 위원장 등 2명을 제외한 8명이 언론인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고흥길 의원과 이원창 의원을 비롯해 각각 KBS와 SBS 앵커 출신인 이윤성 의원과 맹형규 의원, 동아일보 정치부장 출신인 이경재 의원과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박종희 의원, MBC 기자 출신 심재철 의원, KBS 보도본부장 출신 김병호 의원 등 언론인 출신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한편 KBS 보도제작국장 출신인 양휘부 이회창 후보 언론특보는 이 후보의 지근 거리에 있으면서 언론에 대한 창구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방송사에 대한 강경대응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당내에서는 온건파로 알려져 있으나 지난 의원총회에서 “문화방송이 칼을 뽑아 우리를 찌르기 시작했다”며 원색적인 용어까지 동원하며 엄포성 비난을 퍼부은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 역시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다.
언론인 출신들의 언론대응 문제는 지난해에도 심각하게 표출된 바 있다.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와 신문고시를 놓고 한나라당은 언론장악저지특위를 구성, 언론개혁에 동조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정권과의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매도해 물의를 빚었다.
언론장악저지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박관용 의원은 언론사 탈세 수사와 관련해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언론시민단체들을 정부의 ‘홍위병’으로 매도해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중앙일간지 한나라당 출입기자는 “언론인 출신들은 대개 언론계 인맥이 넓고 언론 메커니즘을 잘 알기 때문에 당내에서 대언론 창구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의 최근 행보를 보면 전략적이지도 못할 뿐 아니라 대선을 앞두고 맹목적인 충성심을 보여주려고 오버액션을 하는 것 같다”며 “그런 언론계 간부 출신들의 모습을 보면 씁쓸하다”고 말했다.
박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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