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이재용 수렁'에 빠져있는 삼성

[스페셜리스트 | 경제] 곽정수 한겨레신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곽정수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곽정수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삼성이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줘서 늘 감사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13조 투자계획을 발표한 삼성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6번이나 한 것이 화제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9번 만났는데, 그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감사의 뜻을 밝힌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이 부회장의 뇌물사건 파기환송심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민심에 어긋나고 재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법원은 8월 말 이 부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인정하고, 정유라씨에 제공한 말도 뇌물에 포함시켰다. 파기환송심은 오는 25일 첫 재판이 열린다. 상식적으로는 실형선고가 유력하지만, 이 부회장은 집행유예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있다.


이 부회장이 실제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투자계획을 내놓은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대법원 선고 전에 여러 차례 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재판용 ‘띄우기’라는 해석이 많았다. 이번에도 보수언론들은 ‘이재용의 승부수’라며 과대 포장하고 있다.


대법원 선고에서 확인됐듯이, ‘이재용 띄우기’는 이미 실패한 전략이다. 정부도 “대통령의 삼성 방문과 재판은 별개”라고 선을 긋는다. 대통령이 삼성에 간 것은 투자·고용 부진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무슨 생각을 하든, 정부로서 투자는 무조건 땡큐”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잦은 대기업 방문이 이해는 되지만,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대통령은 일관되게 대기업 의존 성장에서 벗어나겠다고 약속했지만, 큰 성과는 없다. 오히려 올해 방문한 13개 기업 중 9곳이 대기업일 정도로 의존이 더 심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삼성이다. 삼성 안팎에서는 투자 적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투자 대상인 대형 TV용 QD디스플레이는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데도, 재판용으로 무리하게 투자계획을 내놨다는 지적이다. 총수 이익을 위해 기업가치를 훼손한다면 배임이다. 실제 투자할 생각은 없으면서 보여주기식 발표를 한 것이라면,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셈이다.


이러나저러나 삼성만 곤혹스럽다. 삼성이 ‘이재용 수렁’에 빠진 게 벌써 5년째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불공정 합병 논란 이후 국민연금의 부당한 합병 찬성, 국정농단세력에 대한 뇌물공여,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 등 대형 악재가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도 이 부회장은 삼성의 등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이 부회장의 존재가 삼성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이른바 ‘오너 리스크’가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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