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불신, 세월호 때보다 지금 더 심각"

심화된 언론 불신, 출구는 없나… 언론학 교수들의 제언

안 그래도 신뢰가 바닥이던 한국 언론은 ‘조국 정국’을 겪으며 전례 없는 국민적 불신을 마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8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7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의 의혹 관련 언론보도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불신)”는 응답이 59.3%에 달했다. 오마이뉴스는 이튿날 보도에서 “거의 모든 지역, 연령, 이념성향, 정당지지층에서 조 장관 가족 의혹과 관련한 언론보도에 대해 불신 여론이 대다수이거나 다수였다”면서 “이번 조사 결과는 소위 ‘조국 사태’ 국면에서 언론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8월9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에서 14일 사퇴까지 2개월 넘게 한국 언론은 ‘조국 정국’에 올인했다. 언론이 다루는 콘텐츠 대부분이 조국에서 시작해 조국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조국 관련 보도는 시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외면받고 있다. 서초동 촛불집회에 모인 시민들이 검찰개혁과 함께 언론개혁을 외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들은 이제 보도 내용뿐 아니라 기자들의 취재 관행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심화된 언론 불신, 출구는 있을까. 기자들과 시민들의 사이에서 한국 언론을 바라보는 언론학 교수들에게 물었다.


신뢰가 바닥이던 한국 언론은 ‘조국 정국’을 겪으며 전례 없는 국민적 불신을 마주하고 있다. 시민들은 이제 보도 내용뿐 아니라 기자들의 취재 관행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심화된 언론 불신, 출구는 있을까. /뉴시스

▲신뢰가 바닥이던 한국 언론은 ‘조국 정국’을 겪으며 전례 없는 국민적 불신을 마주하고 있다. 시민들은 이제 보도 내용뿐 아니라 기자들의 취재 관행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심화된 언론 불신, 출구는 있을까. /뉴시스


“세월호 참사 때보다 더 심각하다.”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보도에서 또 다시 불거진 언론 불신의 수준을 이렇게 진단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은 ‘정치적 압력과 권력의 통제 하에 있었다’는 핑계를 댈 수 있었지만, 뉴스 가치를 스스로 판단하는 현 상황에서도 불신 여론이 큰 것은 언론 보도가 국민이 기대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평가다.


김 교수는 “기자들이 생각하는 언론의 역할, 취재 방식이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 같다”며 “한국 언론과 기자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실망감,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공적인 역할을 맡겨둘 수 없다는 인식이 이번에 크게 드러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교수를 포함해 인터뷰에 응한 교수 대다수는 언론 불신을 초래한 원인으로 상업적 경쟁과 보도 관행을 꼽았다. 뉴스가 실시간으로 소비되다 보니 클릭수 경쟁이 치열해지고, 보도의 정확성보다 신속성이 중요시되면서 ‘게이트 키핑’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줄어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조국 국면) 초기엔 당시 인사검증 대상인 장관 후보자의 도덕적 결함이 의심될 만한 보도들이 나오면서 언론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며 “반면 경쟁 단계로 넘어간 이후엔 사소한 사안까지 무차별적으로 다루고 의혹 기사를 양산했다. 우리나라 언론에서 경쟁이 격화됐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그런 부분이 당사자와 시민들이 보기엔 불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특히 검찰 보도 관행이 이를 더욱 부추겼다고 꼬집었다. 조 전 장관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정치적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고, 검찰개혁 여론도 많은 상황에서 언론이 검찰 발 이야기를 마치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행태를 그대로 답습해 더 큰 반감을 샀다는 것이다.


언론의 정파성도 불신을 야기한 또 다른 축으로 언급됐다. 송상근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초빙교수는 “언론의 정치적 진영화는 오래 전부터 계속돼왔다”면서 “‘조국’이란 인물을 두고 진보와 보수가 대립한 상황에서 진영논리에 매몰된 언론의 보도 행태가 극단적으로 표출됐다”고 말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도 “언론은 복잡한 사안일수록 시시비비를 가려주고 균형감 있게 보도해야 하는데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정파적인 보도를 내놨다”며 “심각한 언론 불신 상태를 만든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재경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언론 스스로 정파적인 시장 구조와 지형을 만들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저널리즘이 사회를 통합하는 게 아니라 더 찢어놓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우리는 어느 편인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저널리즘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건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당장 (조국 보도에서 문제제기 된) 권력기관이나 정치인이 하는 말을 따져보지도 않고 보도해 정당화해주는 시스템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국 사태’가 한국 언론에 남긴 과제는 적지 않다. 검찰 발 뉴스로 대표되는 보도 관행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언론학 교수들 역시 지금이 중요한 시점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배정근 교수는 “검찰 발 기사는 성격상 그대로 인용할 수밖에 없지만 피의사실 공표, 검찰 수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되는 등 부정적인 여파도 많다”며 “기자들이 당연하게 여겨온 관행과 인식이 크게 바뀌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춘식 교수는 “이제 ‘기레기’라는 말은 특정 매체가 아니라 언론 전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며 “뉴스 가치 판단 기준부터 본격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 출입처·취재원에 의존하지 않고는 기사를 생산할 수 없는지, 뉴스는 무엇이고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성해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보다 근본적인 신뢰 회복 방안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지금의 언론 불신은 겉으로는 프로페셔널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관성에 젖어 있는 기성언론을 향한 것이다. 아이템 선정, 취재원 취재, 보도까지의 과정이 이미 대중과 멀어져있다”며 “기성언론은 시대정신을 놓치고 있다. 기자들이 대중의 관점에서 사회를 들여다봐야 건강한 저널리즘이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들의 변화뿐 아니라 시민들의 인식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송상근 교수는 책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빌 코바치·톰 로젠스틸 지음, 이재경 옮김)에 언급된 10가지 원칙 중 마지막 ‘시민의 권리와 책임’을 강조했다. 송 교수는 “뉴스 수용자들도 언론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며 “시민들은 언론 보도를 무비판적으로 봐선 안 되고, 비판할 때는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일부를 가지고 언론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거나 자기편 안 드는 목소리를 가짜뉴스라고 폄하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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