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다. 동네 앞 중국집에서 시킨 짬뽕에 의문의 갈색 벌레가 빠져 배달돼 온 게 말이다. 난 벌레를 시킨 적이 없다. 벌레 육수가 우러난 짬뽕을 더 먹기도 싫다. 8000원만 날린 셈이다. 블로그에 생생한 벌레 섭식 후기와 다시는 시켜먹지 말라며 중국집 ‘좌표’를 남긴다면 분노가 조금은 풀리겠지만, 글을 쓰면 중국집 주인은 형법 제307조 제1항,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날 고소할 것이다. 이 조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짬뽕에서 벌레가 나왔다(사실)고 블로그에 글을 쓰면(공연히), 동네 짬뽕집의 사회적 평판이 낮아지게 된다(명예의 훼손). 구성요건을 깔끔하게 충족한다. 물론 형법은 이런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짬뽕집 주인이 날 ‘고소하는 것 자체’를 막아주진 못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폐지할 필요가 있다. 이 조항은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발언’이라면 진실과 허위를 불문하고 모두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그 존재만으로 표현의 위축효과를 가져온다. 적시된 사실이 허위이든 진실이든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는 일단 모두 해당하기 때문에, 고소하는 자가 자신에 대해 적시된 사실이 허위임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피고소인이 자신이 공표한 사실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수사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해당 조항의 유지를 주장하는 목소리에도 근거는 있다. 예컨대 범죄피해자와 관련된 사실이 허위가 아니란 이유로 공개가 허용된다면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맞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바꿔말하면, 현재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은 사실상 타인의 명예를 보호하는 것보다 ‘타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보호’해주는 기능에 치중돼 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을 폐지함과 동시에, 사생활 보호에 대한 입법을 따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2016년 발의된 의안처럼 ‘사실을 공연히 적시하여’ 부분을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을 적시하여’ 등으로 개정하면 된다. 유럽의 상당수 국가도 ‘공익적인 진실’을 면책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법전에 남겨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의 ‘명예 보호’가 아니라 ‘사생활의 비밀 침해’를 막는 데 이용하고 있다. 사생활은 철저히 보호하되, 입은 열자는 취지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이 ‘사생활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정되면 △회사의 불공정한 거래 행위, 소위 ‘갑질’에 대해 비난한 글을 관련 단체 및 언론 등에 팩스로 보낸 제약 도매상 △임금 체납 사실을 피켓에 적어 행인들에게 알린 노동자 △사장에게 언어 학대를 당하다 해고당하자 학대 사실을 A4용지에 적어 직원들이 점심 먹으러 가던 식당 등에 돌린 경리 직원은 명예훼손 고소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 입을 막아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유지되는 명예라면, 그건 명예가 아니다.
짬뽕 환불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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