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아픔을 외면하고 클릭 수 장사하는 걸 보고 같은 기자로서 자괴감이 들었다.” 지난 16일 대구 이월드에서 한 아르바이트생이 롤러코스터에 끼여 한쪽 다리를 잃은 사고를 취재한 대구지역 한 기자가 하소연했다. 그가 보기에 일부 중앙 언론사 보도는 피해자와 가족의 상처를 깊게 만들고 있었다. 사고 발생 초기 ‘다리 절단 순간’, ‘접합 않고 봉합’, ‘의료폐기물로 처리’ 등 아르바이트생의 피해 사실을 자극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기자협회보가 중앙 언론사의 보도를 살펴보니 부상 과정과 수술 결과 위주의 내용으로 피해자가 다리를 잃었다는 점을 부각한 기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가 발생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중앙 언론을 비롯한 대부분 언론사가 이월드 측의 직원 안전교육 미시행 문제나 압수수색 시행 등 사고 원인과 수사 경과를 다뤘지만, 사고 발생 시점에는 피해 사실만 확대 재생산되는 보도를 내보낸 것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17일 <대구 이월드 알바생, 다리 접합 수술 불가능 결론...“의료 폐기물로 처리”>라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를 보도해 부상 부위와 처리 방법 등 사고와 관계없는 의료폐기물관리법 내용을 자세히 실었다. 이후 <대구 이월드 알바생, 다리 접합 수술 불가능 결론...경찰, 사고 원인 수사>로 제목을 수정했지만, 기사 본문에는 의료폐기물관리에 대한 내용이 그대로 있었다.
중앙일보는 지난 18일 <놀이기구 낀 채로 10m 끌려가...이월드 알바생 다리 절단 순간> 온라인 기사를 통해 끔찍한 사고 당시가 상세하게 묘사될만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밖에 국민일보는 지난 19일에 <대구 이월드 알바생, 다리 접합 않고 봉합...“손상·오염 심각”>, 동아일보는 지난 18일에 <대구 ‘이월드’ 근무 중 다리 절단된 알바생...접합 수술 실패>, 조선일보는 지난 17일에 <가족 부담 덜어주려다 참변… 이월드 직원, 다리 접합 실패>, 한국일보는 지난 18일에 <대구 이월드 알바생 다리 접합 실패>, 한겨레신문은 지난 17일에 <대구 이월드서 직원 롤러코스터에 다리 끼어 절단> 등의 보도를 했다.
몇몇 언론은 병원 의료진 관계자, 경찰 관계자의 말이나 관할 구청의 행정 조치에 단독을 붙이기도 했다. 중앙은 지난 19일 <다리 절단 이월드 알바생, 접합 수술 못하고 의족 재활>, 지난 20일 <‘다리 절단’ 이월드에 관할구청, 안전서류 전반 제출 명령>의 온라인 기사에 단독을 붙여 보도했다.
이월드 사고를 트래픽 용 기사로만 소비한 중앙 언론의 보도에 대해 대구지역 기자들은 우려를 표했다. ㄱ 대구지역 일간지 기자는 “피해자의 1차 접합 수술이 실패했고 2차 접합을 시도했다는 뉴스도 많았고 피해자를 생각하면 차마 입에 못 올리는 단어까지 써가며 보도했다”며 “문제는 사실관계가 맞지 않은 보도라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수술할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 기사를 최대한 평이하게 썼다. 지역 언론에서 기사를 제대로 써도 포털에서는 자극적인 기사만 소비돼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ㄴ 대구지역 언론사 기자는 “추측성 기사가 나오고 취재가 과열되자 경찰조차 언론에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문제가 된 보도들은 대중의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기사들이다. 왜 심층적이지 않은 내용을 계속 단독으로 쓰며 여론을 몰아가나”며 “이월드에서 인명피해까지는 아니지만 사고가 심심치 않게 나고 있었고 이월드의 모회사인 이랜드그룹이 그동안 지역민을 위한 투자가 적었다는 건 지역 기자들 사이에서 뿌리 깊게 갖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역 언론은 해당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개인보다 회사의 과실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 사고 초기부터 사측의 고용 구조 문제, 안전 문제 등 사고 원인에 대한 보도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이 잘못된 사실을 그대로 보도해 피해자 가족의 항의도 나왔다. 조선일보의 지난 22일 <“놀이기구 작동·안전교육 없었다”…대구 이월드 다리 절단 사고, 또다시 인재>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 가족은 ‘피해자가 열차에서 뛰어내리다 미끄러졌다’고 보도한 일부 언론에 대해 “정자세로 서서 내려야할 지점에서 관행대로 내리려 했는데, 발이 미끌어져 타이밍을 놓쳤다”며 “장난을 치면서 뛴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지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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