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김구철 KBS뉴스투데이 기자
상처 많이 남긴 방송노조 파업, 편가르기 등 후유증 남아.. 방송법안의 문제점공론화에 의미
I. 파업을 마무리하는 민주광장에서의 마무리 집회장, 어느 중앙 위원은 "앞으로는 좀더 즐거운 마음으로 파업에 임할 수 있는 기획이 마련됐으면" 하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파업은, 준법투쟁, 태업 등의 다른 수단이 통용되지 않는 최후의 경우 말하자면 자해 공갈에 가까운 수단인 이상 "즐거운 마음"일 수가 없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번 파업에 대해 방송사나 노조나 모두 비교적 가볍게 생각했던 증거는 많다. 파업 기간 노조원인 차장급의 현업 참여를 노조가 사실상 양해했다는 소문이 돌고, 파업이 1주일이면 끝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II. 애초에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파업이었는지도 모른다. 목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노사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방송법을 제정하라고 정치권에 요구하는 정치 파업이었기에 그랬고, 그 정치권이 너무나 많은 현안에 매몰돼 방송법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게다가 현 여권이 방송개혁 입법에 관한 과거의 입장을 번복함으로써 도덕적 명분을 상실했기 때문에 문제는 더더욱 복잡해졌다.
III. 방송 노조쪽에도 문제는 많았다. 노조원에 대한 집행부의 장악력이 부족했고, 파업을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미흡했고, 또 깔끔하게 마무리할 자신감도 결여됐던 것으로 비쳤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특히 일부 방송 노조의 경우, 자사의 이익만을 주장하려는 파업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파업을 마무리하는 명분으로 제시된 이른바 '노정 합의'는 파업이 아니라도 얻을 수 있었던 것 아니었던지?
IV.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 기자로서는 공영 방송, 언론 기관을 자처하기 위한 KBS의 독립을 외칠 수밖에 없었고 그 제도화를 요구하는 명분을 가진 파업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파업의 상처는 컸다. 노조 집행부로서는 파업의 성과가 불투명할수록 무언가 새로운 쟁점을 개발하고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전선을 확대할 필요를 느낄 것이고, 사측이나 정부는 파업의 목적을 호도할 수 있다면 또는 자신들이 노조의 예봉을 피할 수만 있다면 희생양을 찾게 마련이니까. 결국 이번에도 보도국, 특히 뉴스 앵커들이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이제 막 기자로 자리잡으려는 동료들이 파업 당시 앵커였다는 이유만으로 갈등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그들도 나약한 한 인간인데...
V. 산정상에서굴러내린 거대한 바위는 관성 때문에 경사가 끝나는 지점을 한참이나 지나서야 멈추는 법. 파업에 들어가기는 쉬웠지만, 일단 파업이 시작되면 아무리 각본이 완벽할지라도 각본대로 진행되다가 멈출 수는 없다. 인간이 하는 일이라 돌발적인 상황이 생기고, 다중이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과정에서는 예상치 못한 감정이 증폭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이번 파업은 노조 집행부도 자인하는 바가 없지 않듯이 기획된 파업이 아니었기에 돌발사태가 없을 수 없었다. 파업 초기 광화문 집회에서 송재혁 기자가 갈비뼈가 부러지고(심장 바로 앞의 갈비뼈였다!) 생명에 위협을 받는 중상을 입은 것도 중대한 돌발사건이었다.
VI. 파업 대열에 동참하느냐 동참하지 않느냐를 놓고 자행된 편가르기가 사측과 노측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동료들 간에도 이루어졌고 우울증에 시달리게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업은, 여권의 방송법안이 장기 집권 음모의 한 수단이라는 방송 현업 종사자의 인식을 분명히 밝혔다는 의미는 있다고 본다. 이제 공은 다시 정치권에 넘어갔다. 여야 정치권의 각성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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