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강원 영동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을 정면으로 다룬 첫 다큐멘터리가 지난 29일 공개됐다. MBC강원영동은 이날 방송된 특집 다큐멘터리 ‘숨<사진>’에서 70년 가까운 세월 묻혔던 억울한 죽음의 당사자와 목격자들의 숨죽인 증언을 담아냈다. ‘숨’은 MBC강원영동 홈페이지와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1945년 광복 이후부터 6·25전쟁 시기까지. 대한민국 군경과 인민군, 미군에 의한 학살로 많은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 그런데 노근리 학살이나 제주 4·3사건에 비해 강원 영동지역의 일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전쟁 전까지 고성과 속초 등 절반 이상이 ‘이북 땅’이었던 영동지역에선 피해자들이 먼저 말을 꺼낼 수도 없었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실체를 알려 하지 않았다. 김인성 기자가 휴대전화 하나만 들고 기록에 나선 이유다.
MBC강원영동 ‘뉴스데스크’ 앵커이자 ‘숨’의 제작자인 김 기자는 얼마 안 되는 논문자료를 뒤지고, 향토사학자와 전쟁 당시를 기억할만한 마을의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묻고 또 들었다. 그렇게 기록과 기억을 꿰어맞춘 끝에 당시 전쟁의 흐름에 따라 학살의 양태도, 가해자도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엔 “그걸 왜 캐고 다니냐”고 경계하던 눈빛도, 여러 번 찾아간 뒤에야 겨우 문을 열어주던 손길도, 막상 이야기가 시작되면 복받치는 감정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김 기자는 모든 증언과 영상을 휴대전화와 드론으로 직접 촬영했다. 2월 초부터 시작된 취재는 6개월이 꼬박 걸렸다. 그는 “일찍 나섰으면 더 많은 증언을 들었을 텐데, 억울하게 품에 안고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빚진 느낌”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릴 수 있게 된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70년 동안 억눌린 채 숨 막힌 세월을 살아온 분들이 마음속에 담아만 두었던 것을 저를 통해 얘기하게 만든 것 같아요. 그래서 제목을 ‘숨’이라고 지었습니다.”
1960년 4·19 직후 민간인학살 전국유족회가 만들어졌는데, 유독 강원도에만 없다. 김 기자는 “모래알처럼 흩어진 피해자들을 하나로 모으고, 그들을 좀 더 위하는 쪽으로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부와 지역사회, 지역언론도 계속 관심을 두고 끌고 가야죠. 지금 80대, 90대가 된 피해자와 목격자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누가 가해자였고, 어떤 피해를 겪고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그 과정을 알아야 제대로 사과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우리 다큐는 그 시작점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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